[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기다란 원형 장비가 천천히 바다로 내려왔다. 도르래는 쉴 새 없이 돌아가며 또 다른 기계를 바다 깊은 곳으로 내렸다. 쇄빙연구선 아라온호의 각종 해양 관측 장비가 연구를 진행하는 모습이다. 연구자들은 화면을 통해 기계가 촬영하는 심해의 모습을 보며 토론을 이어갔다. 20년 동안 극지에서 해양 물리 연구를 지속해 온 홍종국·남승일 박사팀과 독일 프랑크 니센 박사팀은 공동연구를 통해 4기 빙하기 동시베리아해 빙상 ‘Icesheet’를 발견했다. 이 같은 사항은 2013년 네이처 지오사이언스를 통해 발표됐다.
홍기원 작가의 영상 작품 ‘마음에 담아라(Wolf Trap)’가 보여주는 아라온호의 모습이다. 2022년 아라온호에 승선했던 홍 작가는 과학자의 끊임없는 도전, 자유로운 실험정신을 의미하는 영문제목 ‘Wolf Trap’으로 예술과 과학의 접점을 모색하는 자신의 예술세계를 표현했다. 홍 작가는 “과학을 연구해 가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자신의 입장에 따라 와닿을 수 있는 삶의 태도와 혜안, 일상을 대하는 태도를 만날 수 있다”며 “그러한 부분을 작품에 풀어내고 싶었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그런데 14분가량 이어지는 영상을 앉아서 보는 장소가 특이하다. 영상 뒤로는 비행기 관제탑과 활주로를 달리는 비행기들이 보인다. 여행가방을 들고 출국장으로 향하는 여행객들도 수없이 스쳐 지나간다. 전시장소가 대한민국의 대표 공항인 인천국제공항이기 때문이다. 제2여객터미널 출국장 내 전시공간(253번 게이트 인근)에서 극지 경험을 담은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 ‘남극/북극 출발→인천공항 도착’ 전시 전경(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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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극지연구소, 인천국제공항공사와 함께 오는 11월 30일까지 극지를 주제로 한 전시 ‘남극/북극 출발→인천공항 도착’을 공동 개최한다. 예술위원회가 인천국제공항공사와 협력해 개최하는 첫 전시다. 예술위원회와 극지연구소가 운영하는 극지 레지던스에 참가한 김승영, 조광희, 손광주, 김세진, 염지혜, 이정화, 홍기원 작가의 설치·미디어 작품 7점을 선보인다.
전시는 작품을 통해 극지의 생생함을 전하고자 기획됐다. 남극과 북극에서 출발한 작품들이 인천국제공항에 상륙한 장면을 공간 디자인으로 풀어냈다. 김효정 큐레이터는 “공항과 극지는 특정한 국적이 없는 공간이라는 점, 24시간 운영되어 특정한 시간이 느껴지지 않는 공간이라는 점, 영구히 체류하지 못하고 잠시 머물다 가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많이 닮았다”며 “여행객들이 출국장에서 잠시 머물러서 시원한 남극과 북극의 여느 풍경을 볼 수 있는 전시로 기획했다”고 말했다.
| ‘남극/북극 출발→인천공항 도착’ 전시 전경(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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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가까이에서 극지를 마주하며 여름을 보낸 예술가들의 경험과 극지가 품고 있는 서로 다른 이야기를 소개한다. 2011년 남극 세종과학기지를 다녀온 김승영 작가는 진공 상태의 푸른 유리병 안에 들어가 있는 기분으로 남극의 백야를 표현한다. 그의 작품 ‘플래그’(Flag)는 정지된 듯한 풍경 속에 멀리 깃발만 흔들리는 모습을 담았다. 김 작가는 “깃발이 날아가지 못함에도 계속 흔들리고 있는 모습이 나와 같다는 생각에 이를 통해 삶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조광희 작가의 ‘아름다운 소멸’은 기온상승으로 사람 크기만 한 얼음들이 집단으로 녹고 있는 풍경을 담았다. 가상의 영토 ‘G’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김세진의 ‘2048’, 평화로운 남극의 실사무빙 이미지 위에서 꼬마유령 캐스퍼와 물개가 재밌게 노는 영상을 보여주는 염지혜의 ‘검은 태양’, 아라온호 항해기를 담은 손광주의 ‘파이돈’, 아무도 가지 못한 파란 땅 올드랜드를 모티브로 한 이정화의 ‘올드랜드2’도 만나볼 수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관계자는 “이전에도 공항 내에서 전시를 선보인 적은 있지만, 과학과 예술이 융합된 전시를 선보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항공산업이 탄소를 많이 배출할 수밖에 없는 산업이기 때문에 태양열 등 친환경에너지를 사용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모두가 환경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전시를 마련했다”고 전했다.
| 김승영 작가의 ‘Flag’(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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