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김병주 MBK파트너스(MBK) 회장이 기관 투자가(LP)에 보낸 연례 서한에서 남긴 말이다. 지난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직후처럼 기업 인수·합병(M&A) 큰 장에 대비해 투자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연초 의지와 달리 올해 국내 M&A 시장에서 MBK가 이렇다 할 투자 행보를 보이지 않고 있다. 유례없는 빅딜(대형 거래)이 속출하는 현 상황에서 관심이 쏠리는 대목이다. 자본 시장에서는 MBK가 관심을 보이던 매물에 강력한 경쟁자들이 등장한데다 국세청의 세무 조사 등 어수선해진 국내 상황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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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MBK파트너스는 올해 1분기 기준 60억 달러(6조8000억원)가 넘는 미소진 자금(드라이파우더)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5월 중국 운송 물류기업 ‘에이펙스 로지스틱스’ 매각으로 8000억원을 회수한 데 이어 두산공작기계와 일본 골프장 체인 ‘아코디아 넥스트 골프’ 매각에 나선 점을 고려하면 자금 보유는 역대급으로 치달은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MBK가 올해 ‘M&A 큰 손 역할’을 맡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MBK는 국내 M&A 시장에서 인수자로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케이뱅크 유상증자에 참여했지만 대형 매물 인수전에서 최종적으로 새 주인에는 오르지 못하고 있다.
MBK는 국내 배달앱 시장 점유율 2위인 요기요 인수전에도 참전했다. 적격인수후보(숏리스트)에 오르며 인수 의지를 불태우다 막판 인수 의사를 철회했다. 공교롭게도 앞선 잡코리아 인수전에서 맞붙었던 어피너티와 GS리테일 등이 주축이 된 어피너티 컨소시엄이 요기요 새 주인에 올랐다.
‘세무조사 논란·홈플러스 갈등도 원인’ 분석도
상반기 M&A 시장에서 ‘뜨거운 감자’였던 이베이코리아 인수전도 본입찰 당일 인수의향서를 내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이베이코리아 바이아웃(경영권 인수) 대신 자금을 대고 지분을 취하는 재무적투자자(FI)로 나설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기도 했지만 MBK 측은 ‘(그런 식의 접근은) 하지 않는다’며 선을 긋기도 했다.
다만 거래 규모나 업종, 이전 트랙레코드(투자 전력)를 종합했을 때 해당 매물들과 MBK 사이 강한 연결고리는 드러나지 않고 있다. 세간의 예상이 적중할 경우 국내에서 이렇다 할 M&A 없이 한 해를 보낼 가능성도 적지 않다.
업계에서는 MBK가 투자 회수에 집중하고 있다는 평가를 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최근 불거진 국세청의 MBK 세무조사와 2015년 7조원에 인수한 홈플러스 임직원들과의 갈등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국세청은 MBK에 대한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에 회사 측이 ‘사실과 다르다’며 공방을 예고한 상태다. 지난 16일에는 전국 홈플러스 80개 매장에서 근무하는 노조 조합원 약 3500명이 폐점 중단과 고용안정 쟁취를 주장하며 추석 총파업에 돌입하기도 했다. 지난해부터 해를 넘긴 임직원과의 갈등이 좁혀지지 않는 상황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한 업계 관계자는 “내부 방침에 따라 인수 의지가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정확한 내막은 알 수 없다”면서도 “최근 상황들이 (MBK파트너스가) 국내 M&A 참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닌 것은 부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