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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그간 양심적 병역거부는 정당한 병역거부 사유가 아니라는 판례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헌재가 대체복무제가 없는 병역법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결정을 내놓은 만큼 대법원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만 헌재 결정에 대한 해석이 법조계 내에서도 엇갈리는 데다 대법원이 헌재 하위 법원이 아니라는 점에서 다른 결론을 내릴 가능성도 있다.
대법원은 오는 30일 오후 2시 오모씨가 제기한 병역법 위반 사건과 남모씨가 내놓은 예비군법 위반 사건에 대한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을 연다.
두 사건 모두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사건이다. 이들은 각각 현역 입영하라는 통지와 예비군 훈련 소집 통지에 불응해 병역법 위반과 예비군법 위반으로 기소돼 1심과 2심에서 유죄를 받자 대법원에 상고했다. 대법원은 최근 2심에서 병역법 위반 혐의로 무죄가 선고된 사건을 공개변론 대상에 추가했다.
헌재 대체복무제 도입 요구+대법관 진보로 한 발 이동
쟁점은 병역법과 예비군법의 병역을 거부할 ‘정당한 사유’에 양심이나 종교에 따른 병역거부가 포함되는지다. 그간 대법원은 2004년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는 ‘정상적인 병역거부 사유가 아니다’라고 판시한 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일관되게 징역 3년 이하의 징역형을 선고해왔다. 병역거부자의 양심실현 자유가 국방의 의무보다 우월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헌재는 최근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대체복무의 길을 열어주라고 결정했다. 헌재는 병역이행 수단에서 대체복부를 제외한 병역법 5조 1항이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양심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고 봤다. 병역법 5조1항은 병역 종류를 현역·예비역·보충역·병역준비역·전시근로역 등으로만 규정하고 있다.
헌재는 “대체복무제 도입이 우리나라의 국방력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거나 (형평성 논란으로) 병역제도의 실효성을 떨어뜨린다고 보기 어렵다”며 “특수한 안보상황을 이유로 대체복무제를 도입하지 않거나 도입을 미루는 게 정당화된다고 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한 변호사는 “헌재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처벌하는 것을 문제가 있다고 본 것”이라며 “법원 하급심에서 상당부분 무죄가 나오는 상황까지 고려하면 대법원에서 전향적으로 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말했다.
신임 대법관으로 진보성향 인사들이 대거 수혈된 점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김선수, 이동원, 노정희 신임 대법관은 지난 2일 6년 임기를 시작했다. 김 대법관은 대표적인 인권 변호사다. 노 대법관 역시 진보성향 판사들의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으로 여성과 소수자 문제에서 진전된 목소리를 내왔다. 법원행정처장을 포함한 대법관 14명 중 문재인 대통령이 지명한 인물은 현재 총 8명이다.
이번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은 전원합의체에서 심리하기 때문에 대법원의 구성 지형이 중요하다. 전원합의체는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13명의 대법관이 참여하며 다수결로 판결을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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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대법원이 기존 판례를 유지하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에 더 부합한다는 시각도 있다.
입영 소집에 불응하면 처벌하도록 한 병역법 제88조 제1항에 대해 헌재는 재판관 4(합헌) 대 4(일부 위헌) 대 1(각하)로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이 때문에 대체복무에 대한 입법이 이뤄질 때까지 하급 법원은 물론 대법원이 선고를 미룰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헌재에서 병역기피자에 대한 처벌 조항이 합헌이라고 본 4명의 재판관 중 강일원·서기석 재판관은 “병역종류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이 선고되면 법원도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당해 사건 법원은 개선입법이 될 때까지 재판절차를 정지했다가 대체복무제가 도입되면 사건을 처리하는 방안도 있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국회가 대체복무제를 도입할때까지 선고를 미루라는 조언이다.
대법원은 오는 30일 전원합의체를 열지만 당일 선고가 내려지는 것은 아니다. 최종 선고는 공개변론 후 대법원장과 대법관의 최종토론을 거쳐 2~4개월내 결론을 내리는 게 일반적이다.
‘최고법원’을 두고 헌재와 경쟁의식에 있는 대법원의 위상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 재판관 다수는 양심적 병역거부가 병역법의 정당한 병역 거부 사유에 해당한다고 봤다. 대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무죄로 판단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다만 임 교수는 “두 법원이 최고의 사법기관이라는 같은 지위를 가져 대법원이 별개의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헌재와 대법원은 과거 유신시절 긴급조치의 위헌 여부 판단에서도 긴급조치를 법률(헌재)로 볼 것인지 명령(대법원)으로 볼 것인지를 두고 엇갈린 판단을 내린 적이 있다.
만약 대법원이 계류중인 양심적 병역 거부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한다고 해도 이미 유죄로 형이 확정되거나 수형자들은 대법원 재심이나 보상청구를 받기는 어렵다는 게 법조계 시각이다. 소급적용 문제 때문이다.
정부의 사면 복권이 이뤄질 가능성은 있다. 또다른 변호사는 “처벌 조항 자체가 합헌이라 형사보상은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정부가 형을 만료한 이가 공직에 임용할 수 있게 복권하고 형이 남은 이는 남을 형을 면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