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투자 절실한데..靑 한마디에 소신 꺾은 경제 수장

이재용 부회장 석방 이후 반년 준비한 100조 투자
청와대 제동에 김동연 부총리 발빼며 무기한 연기
AI 인재 1000명 확보..국내 R&D 투자 계획도 지연
삼성 기자단 취재도 불허 '기재부 행사' 전락 비판
  • 등록 2018-08-06 오전 4:30:00

    수정 2018-08-06 오전 8:40:27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6일 삼성전자 평택사업장에서 이재용 부회장과 예정대로 만남을 가진다. 그러나 애초 계획됐던 100조원대 투자 발표가 청와대의 제동으로 무기한 연기되면서, 경제 수장으로서의 소신을 지키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데일리DB]
[이데일리 양희동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이 지난 2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난 이후 약 6개월을 준비해온 삼성그룹의 100조원대 규모 투자 계획 발표가 사실상 무기한 연기됐다. 이 투자 계획은 애초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재용 부회장이 6일 삼성전자 평택사업장에서 만남을 가진 직후 공개될 것이란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청와대가 지난 3일 “(삼성에)구걸하는 것처럼 국민이 오해할 수 있다”며 제동을 걸면서 회동을 불과 사흘 앞두고 전격 무산된 것이다. 일각에선 심각한 경기 침체 속에 재계 1위 삼성의 투자 및 일자리 확대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데도 경제 수장인 김동연 부총리가 청와대 눈치를 보며 당당한 결정을 하지 못한 데 대해 거센 비판이 나온다.

재계에 따르면 김동연 부총리는 예정대로 6일 오전 삼성전자 평택사업장을 찾아 이재용 부회장을 만나고 규제개선 및 현장 애로 해소 등에 대한 간담회를 갖는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를 통해 발표가 예상됐던 삼성전자의 반도체·디스플레이·연구개발(R&D) 등에 대한 투자 확대 및 일자리 창출, 사회공헌 등 약 100조원 규모의 상생 방안 발표는 일단 무산됐다. 애초 기재부는 삼성 측이 마련한 투자 방안을 전달받아, 회동 직후 공식 발표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앞서 김 부총리는 취임 이후 LG그룹(2018년 19조원 투자·1만명 고용)과 현대자동차그룹(5년간 23조원 투자·4만 5000명 고용), SK그룹(3년간 80조원 투자·2만8000명 고용), 신세계그룹(3년간 9조원 투자·매년 1만명 이상 고용) 등을 차례로 방문, 당일 기재부를 통해 대규모 투자 및 고용 계획을 발표해왔다.

재계는 김 부총리의 입장 번복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월 인도 방문길에 이재용 부회장과 처음 만나 “한국에서도 더 많이 투자하고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한 이후, 삼성은 물론 재계와의 관계 개선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불과 한 달도 안 돼 또다시 청와대가 ‘삼성 포비아(공포증)’를 드러내고, 김 부총리마저 이에 동조해 상황을 원점으로 되돌린 데 대한 실망감이 커지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청와대 경제팀은 재계에 대한 필요 이상의 반감을 드러내 왔지만 김동연 부총리가 정부와 기업 사이에서 균형감을 유지해왔다”며 “경제 수장은 정치 논리에 휩쓸리지 않고 국익에 부합하는 결단을 내려야 하는데, 삼성과의 관계 정상화 문턱에서 다시금 뒷걸음질치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삼성을 제외하고는 국내 투자 촉진과 일자리 창출이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를 정치 논리로 외면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세계 1위인 반도체는 물론 4차 산업 혁명의 핵심 기술인 인공지능(AI) 분야에서도 삼성전자는 2020년까지 1000명의 선행 연구 인력을 확보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2017년 한해 삼성전자의 R&D투자액은 16조 8031억원으로 LG전자(4조 338억원)와 현대자동차(2조 4995억원), SK하이닉스(2조 4870억원) 등 2~10위 기업의 투자총액(15조 9375억원)을 능가했다. 무기한 연기된 삼성의 투자 계획에는 AI 등 4차 산업 및 미래 먹거리 관련 투자·일자리 확대 방안도 포함돼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 부총리의 이번 평택사업장 방문에 기재부 기자단의 취재만 허용하고, 삼성 기자단은 현장 접근을 불허한 것도 ‘삼성 포비아’를 단적으로 드러낸 사례라는 지적이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인도 휴대전화 공장 방문 당시 청와대가 ‘이재용 부회장을 초대하지 않았다’며 주객이 전도된 모습을 보인 데 이어 이번 평택사업장에서도 기재부 기자단의 취재만 허용한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처사”라며 “일부에선 이번 김 부총리 방문이 삼성전자가 장소를 제공한 ‘기재부 행사’라는 우스개 소리까지 나온다”고 지적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평택사업장은 첨단기술을 다루는 보안시설이라 삼성과 협의해 결정한 사안”이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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