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스트하우스'라더니 고시원…변칙 숙박영업 성행

공실 줄이려는 업주들, 초단기 투숙객 상대 영업
전용 예약대행 사이트도 등장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 없어 화재 등 안전사고 무방비
  • 등록 2017-06-07 오전 5:00:00

    수정 2017-06-07 오전 5:00:00

고시원으로 신고를 한 뒤 게스트하우스로 영업 중인 서울 종로구의 한 ‘유사 게스트하우스’ 건물. 외벽 간판에 ‘게스트하우스’와 ‘원룸텔’이란 말이 같이 붙어 있다. (사진=윤여진 기자)
[이데일리 유현욱 윤여진 기자] “수건과 샴푸, 치약·칫솔은 방에 있어요.”

서울 종로구에 있는 한 3층 건물. 주말 이틀 정도 묵겠다고 하니 자신을 총무라고 소개한 한 남성이 방으로 안내했다. 14㎡(약 4평) 크기의 방엔 1단 냉장고와 구형 TV, 침대가 있었다. 방은 성인 남성 한 명이 겨우 발 뻗고 누울 수 있는 수준이다. 샤워장과 화장실은 공동 사용이라고 했다. ‘게스트하우스 고품격 풀옵션 원룸텔’이란 거창한 홍보와 달리 대학가의 흔한 고시원이다.

게스트하우스 가장 숙박영업…전용 예약사이트도 등장

다중이용업소로 신고한 고시원을 게스트하우스(외국인관광도시민박)처럼 속여 변칙 영업을 하는 곳이 늘고 있다. 게스트하우스란 도시 지역 주택을 이용해 외국인 관광객에게 한국의 가정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숙식 등을 제공하는 곳이다. 230㎡(약 69.5평) 이하 규모의 주거용 건물에 외국어 안내가 가능한 운영자가 거주해야 한다.

게스트하우스로 신청하려면 관할 지자체의 허가가 필요하다. 그러나 공실을 줄이려는 고시원 업주들은 허가를 받지 않은 채 인터넷 숙박 예약사이트에 게스트하우스인 것처럼 속여 손님을 끌어모으고 있다.

최근에는 이런 고시원만 따로 묶어 예약을 대행해주는 인터넷 사이트까지 등장했다. 이 사이트에 등록된 고시원만 2518곳(25일 기준)으로 사이트 하루 방문객만 2만명에 육박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불법 숙박업 단속은 대개 호텔 예약사이트 위주로 이뤄지다 보니 감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곳에서 만난 고시생 박모(24·여)씨는 “7개월 동안 살았지만 게스트하우스처럼 숙박 영업을 하는지는 전혀 몰랐다”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리빙텔(고시원)만을 묶어 예약을 대행해주는 인터넷 사이트 갈무리.
위생 불량·화재 피해 우려…업주들 “고의 아냐” 발뺌

변칙 영업을 하고 있는 탓에 화재 등 안전사고 우려에는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숙박업소인 게스트하우스는 화재에 대비해 의무적으로 스프링클러를 설치해야 하지만, 2009년 7월 이전에 지어진 고시원에는 설치 의무가 없어 화재 발생 시 대형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또 게스트하우스와 달리 고시원 내부의 개별 공간은 법적으로 객실이 아니기에 소독 의무가 없다. 동대문구의 한 고시원에 사는 외국인 유학생 A씨는 “하루 이틀 짧게 머무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공용 화장실을 더럽게 사용하는 탓에 불편이 이만저만 아닌데 고시원장은 방치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단속 주체가 애매한 데다 처벌수위도 낮아 이같은 불법 숙박영업이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다.

종로구 보건소 관계자는 “공중위생관리법에 따라 등록된 숙박업소는 경고·영업정지·폐쇄 명령 순으로 단속할 수 있는데 고시원의 경우 애초 숙박업소가 아니어서 단속이 가능한지 애매해 경찰과 서울시 특사경에 신고하고 있다”며 “위반 사실이 드러나도 일반적으로 수백만원의 벌금형이 내려지는 게 고작이라 배짱영업을 계속하는 업소가 적지 않다”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보건소로서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미등록 업소이니 이용하지 마십시오’라는 스티커를 붙이는 정도”라며 “반복적인 법 위반 시 폐쇄 근거를 마련하는 등 업주들 스스로 변칙 영업을 하지 않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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