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 비현실과 현실의 변주가 된 '태후앓이'

  • 등록 2016-04-05 오전 3:01:01

    수정 2016-04-05 오전 3:01:01

[이재원 문화평론가·한양대 실용음악과 겸임교수] “제가 미쳤지 말입니다.” 주부인 지인의 카카오톡에 송중기 사진과 함께 이런 글귀가 적혀있다. 좀처럼 드라마를 화제에 올린 적이 없는 모임에서도 KBS ‘태양의 후예’(태후) 이야기로 대화의 소재가 끊이지 않는다. 이 드라마를 시청할 때에는 남편이 아내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신상에 이롭다는 우스개소리도 떠돈다. ‘태양의 후예’는 시청률이 3월31일 33%(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했다. 자체 최고 시청률은 물론 동시간대 1위를 차지하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음원 차트마저 ‘태양의 후예’ OST가 점령할 정도로 가히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가상공간에서 벌어지는 재난, 그리고 송송커플(송중기 송혜교) 구원커플(진구 김지원)의 비현실적인 외모와 대사는 시청자들의 현실을 위로한다. 비현실을 현실화하기까지 ‘태양의 후예’의 진통은 컸다. ‘파리의 연인’ ‘시크릿 가든’ 등 집필작마다 히트를 쳤던 김은숙 작가의 작품이라 당연하다고 여길 상황은 아니었다. 김 작가의 ‘친정’과도 같았던 SBS도 이 작품의 편성을 포기했었다. 재난을 소재로 한 장르 드라마가 크게 히트를 냈던 데이터가 많지 않은데다 군복을 입는 장면이 주(主)를 이루는 통에 간접광고(PPL)가 여의치 않을 것으로 여긴 현실적 이유였다.

‘태양의 후예’의 성공은 언뜻 드라마의 성공 문법에 충실한 것처럼 보인다. “내 안에 너 있다”(‘파리의 연인’)를 쓴 김 작가의 전매특허로 손발이 오글거리는 달콤한 대사가 등장하는 이유가 크다. 영화투자배급사 NEW가 제작한 영상미를 꼽는 이도 있을 터다. 하지만 제작 과정을 보면 기존 문법을 파괴한 부분이 더 많다. 먼저 시청자 반응을 모니터하며 드라마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믿음을 깼다. ‘태양의 후예’는 국내에서 사전제작 드라마의 첫 성공이라고 할 만하다. 2008년부터 MBC ‘친구, 우리들의 전설’ ‘2009외인구단’ ‘로드 넘버원’, SBS ‘비천무’ ‘사랑해’ ‘파라다이스목장’ 등이 사전제작됐지만 시청률이 10%를 넘기지 못했다. 시청자의 평과 시청률을 점검하며 자극적인 코드를 삽입하는 드라마라야 우리 실정에는 맞는다고 생각했던 관행이 이번에 무너진 셈이다.

광고와 PPL 중심에서 판권 수출을 통한 수익모델 가능성을 보여줬다. 드라마 외주 제작 시스템이 늘어나고 제작비와 스타 개런티 확보를 위해 광고 외에 PPL이 주요 매출 통로로 여겨지면서 PPL이 가능한 이야기 유형인 지가 어느새 드라마에서 중요한 문법으로 자리잡고 있다. ‘태양의 후예’는 PPL을 많이 붙일 만한 이야기 구조는 아니지만 제작사 NEW는 130억원의 제작비에서 판권과 방영권을 염두에 두고 매출 목표를 구성했다. 물론 PPL 수입도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드라마의 개연성을 해칠 정도로 주객이 전도되는 장면은 찾기 어렵다. 중국 동영상 플랫폼 아이치이에 회당 150만위안(약 3억원)에 판권을 판매했다. ‘별에서 온 그대’ 판권료(회당 18만5000위안)의 8배에 달하는 액수다. 아이치이에 판매하기 위해 그동안 성공한 선례가 별로 없던 사전제작을 감수했다. 중국 방송 담당 정책부서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광전총국)이 TV에만 적용되던 사전심의제를 인터넷까지 확대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태후앓이’의 말랑말랑한 사랑의 속삭임에 취하기는 현실도피일 뿐일까. 아니면 비현실을 현실로만들어내려는 제작진 의지에 대한 박수가 아닐까. 군복을 벗고 송중기가 송혜교를 구해낸 뒤 외교 분쟁을 우려하는 국방부 관계자들 앞에 대통령이 등장해 인질을 구했다면 외교와 정치 문제는 대통령 관할이니 아무도 징계하지 말라며 ‘이상적인 현실’을 포기하지 않는 ‘태후’에 희망을 걸어보고 싶은 염원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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