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mp 2020)(금융 영토 확장)①신대륙을 개척하라!

은행산업 수익성 악화..해외진출 생존 문제로 부각
`가만히 있으면 국내 시장도 뺏긴다` 영토확장 절박
[이데일리 창간10주년 특별기획]

  • 등록 2010-03-19 오전 9:40:00

    수정 2010-03-19 오전 11:23:36

[이데일리 김수연 기자] 은행 산업의 수익성이 하향 곡선을 그린지는 꽤 오래됐다. 이미 포화상태로 변해버린 국내시장의 경쟁 환경을 고스란히 반영한 결과다. 이젠 생존을 위한 돌파구가 필요하다. 다름아닌 지역이나 사업부문에 대한 영토확장이다. 망원경을 들이대면 여전히 미진하다. 은행 산업 경쟁력의 현주소다. 하지만 현미경으로 보면 신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꿈틀거리는 곳도 적지 않다. 차별화한 영토확장에 나서고 있는 금융권 현장을 여덟차례에 걸쳐 담아봤다.[편집자주]
 
장면 1. 국내 최대 은행인 국민은행의 2009년 당기순익은 고작 6300억원이었다. 시중 금리의 급락 때문이었다. 2008년 4분기 5.44%였던 CD(양도성예금증서) 금리는 불과 두분기 만인 2009년 2분기 2.41%까지 곤두박질쳤다. 예상치 못한 속도로 금리가 떨어지자 가계대출이 많은 국민은행이 그대로 `당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른 은행도 마찬가지였다. 은행들은 주가지수 등락에 따라 순익이 춤을 추는 증권업을 `천수답경영`이라며 비웃곤 했다. 하지만 은행도 하나 다를 게 없었다.

장면 2.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위기가 절정이던 2009년 말, 국내 대형 시중은행장 A씨는 입술이 타들어갔다. 미국과 유럽 은행들이 문제였지, 그의 은행은 멀쩡했는데도 외화를 빌려줬던 은행들이 대출을 회수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우리 은행이 문제없는 건 당신들이 더 잘 알지 않느냐, 갑자기 돈을 거둬가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 설득하고 사정했지만 안통했다. 결국 외화대출을 갚고 엄청나게 비싼 금리에 다시 빌려올 수 밖에 없었다. A행장은 해외 은행들의 `봉` 노릇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개탄스러웠다. 나라 밖에서 소매영업을 해 현지 예수금을 받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 오래전부터 추진해 왔던 프로젝트긴 했지만, 해외법인을 설립해 현지 영업을 해야 한다는 그의 확신은 더욱 굳어졌다.

한때 우리나라의 금융업, 특히 은행은 `땅짚고 헤엄치는` 장사였다. 자본에 대한 수요는 언제나 넘쳐 공급자 우위였다. 라이선스 산업이던 은행은 아무리 질 낮은 서비스를 제공해도 고객이 줄을 섰다.

그러나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2009년 서브프라임 사태로 두 차례의 금융위기를 겪고 난 지금, 상황은 달라졌다. 국내 은행시장은 이미 `레드오션`이 됐고, 그나마 국내 시장도 지키지 못했다. 글로벌 금융사들이 진입해 소매시장 일부를 차지했고, 대기업 고객은 완전히 빼앗겼다. 이제 국제경쟁력 없이는 국내 생존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신시장을 개척, 영토를 넓히지 않으면 더이상 지속가능한 성장을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 `레드오션` 은행 산업
 
은행산업의 수익성은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은행은 대부분 예수금과 대출의 금리차이를 먹고 사는데, 이를 나타내는 지표인 순이자마진(NIM)이 꾸준한 하락 추세다.
 

자기자본이익률(ROE)도 떨어지고 있다. 2004년 18.23%에 달했던 국내 은행의 ROE는 2006년 15.52%, 2008년 8.3%로 낮아졌다. 2008년말 포스코의 ROE는 17.01, SK텔레콤은 11.53%였다.   
 
이런 현상을 두고 신한은행 이백순 행장은 "주주들이 신한 주식을 팔고 포스코 주식으로 전부 갈아타지 않는다고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총자산이익률(ROA) 역시 2005년 이후 하향세다.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서병호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에 따르면 선진국 금융사들이 해외로 시장을 넓혔던 이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6월 낸 보고서 `국내 금융회사의 해외진출 전략과 정책적 시사점` 보고서에서 서 위원은 "글로벌 금융회사들의 경우 해외진출을 통해 자국시장의 포화현상을 극복했고, 이 것이 지속성장의 밑걸음이 됐다"고 했다.
 
수익의 지역적 다각화는 안정적 수익기반을 제공했다. 해외진출을 통해 축적된 글로벌 네트워크는 자금조달, 연구개발, 인력양성 등에서 국제적 경쟁력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 국내시장 지키기에도 실패 
 
수익성은 예전만 못하다 해도 그래도 국내 시장만 움켜쥐고 있으면 그럭 저럭 먹고 살만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국내 금융사들이 붙잡고 있는 것은 시장의 일부인 가계고객 뿐이다. 핵심 기업 고객은 이미 글로벌 투자은행들에 대부분 내줬다.
 
국내 기업들의 해외 자금조달 수요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미 글로벌 기업이 된 삼성이나 LG 같은 대기업은 더욱 그렇다. 회사채는 물론 주식도 해외에서 발행한다. 그런데 이런 대규모 인수 주선 업무들을 외국계 회사들이 독식하고 있는 것. 우리나라 금융사들이 국내 기업의 해외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면서 고객기반을 잠식당했다.
 
2008년 국내 기업의 해외발행채권 주관사 실적을 보면 HSBC, 메릴린치, 도이치 뱅크, 씨티, RBS 등의 시장점유율이 55.2%에 달한다.
 
해외 시장만 그런 것도 아니다. 2008년 국내 기업의 `국내` 주식시장 모집 매출 주관사 실적 역시 크레딧 스위스, 씨티, JP모건, UBS 등이 상위를 차지했다. 

◇ 살고 싶으면 영토를 넓혀라

이런 현실 때문에 금융사들은 영토 확장에 나서고 있다. 현실이 밖으로 내모는 상황이다. 하지만 과거와는 양상이 다르다. 거창한 꿈만 좇아 선진 시장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순진하고 안일한 태도와는 사뭇 달라졌다.

리테일 시장은 아시아 및 중국 외곽지역 등 금융발달이 우리나라보다 늦은 곳을 중심으로 개척되고 있다. 홍콩 등 발달한 금융시장으로의 진출은 반쯤 놓친 한국 기업고객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함이다.

일본에 소매 영업 은행을 세운 이례적인 신한지주의 사례도 있다. 미국 진출은 독특한 시장이 형성돼 있는 교포사회를 대상으로 진출하고 있다. 우리금융이 로스앤젤레스(LA) 소재 최대 교포은행인 한미은행을 인수하려는 것도 이런 이유다.

한편으로는 해외로 나가는 것 뿐 아니라 신영역을 개척하면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도 한다. 최근 하나은행이 SK와 손잡고 새로 출범시킨 하나SK카드는 금융과 통신, 유통이 융합한 단적인 사례다. 하나지주 관계자는 "아직은 좀 이른 감이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아예 진입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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