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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서울 서초구 협회 사옥에서 만난 김재록 대한건축사협회장은 한강권 하이엔드(최고급) 아파트를 중심으로 너도나도 외국 유명 건축 설계사 모시기에 혈안이 된 세태에 직격탄을 날렸다. 해외 유명 건축사는 기본 설계만 하고 세부 설계는 국내 건축사사무소들이 대부분 맡아서 한다는 이야기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김 회장은 이같은 ‘건축 사대주의’를 만든 것은 결국 정부를 비롯한 건축계 모두의 책임이라 강조했다. 그는 당장 건축물 설계 공모부터 국내 작품 차별이 만연하다고 소리를 높였다. 김 회장은 한 가지 사례를 들어 “우리나라 건축사들이 제출하는 독창적인 설계에 대해서는 공모 심사위원나 관공서에서 지적을 많이 하고, 규제도 많다”면서 “반면, ‘해외에서 어떤 유명한 건축사가 설계했다’면 지적조차 안 하는 문화가 팽배해 있다”고 언급했다.
김 회장은 화살을 정부로 돌렸다. 일본은 정부 지원하에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 수상자를 9명이나 배출했다. 특히 바로 직전 수상자인 야마모토 리켄(山本理顯)도 일본인이다. 한국은 아직 0명이다.
최근 국토교통부는 건축 구조도면의 구조계산 결과를 건축구조기술사가 최종 확인·검증해야 한다는 취지의 ‘건축물의 설계도서 작성기준’을 개정·시행했다. 2023년 검단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사고로 촉발된 건축사와 건축구조기술사 간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고자 하는 취지다. 당시 구조기술사들은 자신들이 건축사의 하청관계라며, 붕괴 책임 소재는 건축사에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내놨다.
김 회장은 붕괴 당시 복잡한 상황을 정리했다. 그는 “당시 지하주차장 설계는 LH의 특수공법(무량판)이 들어갔었다. LH에서는 구조기술사에게 ‘도면을 그리라’ 했다”면서 “막상 구조기술사이 그릴 능력이 안돼 재하청을 줬고, 세금계산서만 한 건축사가 끊어준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구조기술사와 건축사 간 책임 소재 다툼이 벌어졌다. 김 회장은 이번 개정을 통해 구조기술사에게 우선 책임을 부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이 경우에도 도덕적 책임을 부여한 것이지, 처벌 규정은 없다”고 덧붙였다.
“30년 전 설계비, 지금과 차이 없어”
그는 건축설계업을 둘러싼 모든 문제 해결의 단초는 ‘민간대가 법제화’라고 강조했다. 최근 국회에는 폐지 17년 만에 ‘민간대가 기준 법제화’가 여야 합의 하에 발의됐다.
김 회장은 “제가 개업한 지 30년이 넘었는데, 1990년 초 설계비와 지금 설계비가 큰 차이가 안 난다”면서 “안전한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충분한 대가가 형성돼야 한다. 이 때문에 민간 대가 기준 정상화에 많은 노력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록 회장은…
1959년생으로 건국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했다. ㈜청구 건축사무소 대표이사로 서울시건축사회장과 대한건축사협회 부회장, 건축사등록원 운영위원장, 대한건축사협회 대외협력단장 등을 역임했다. 지난해 1월, 임기 3년 신임 회장에 당선돼 같은해 3월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