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 취재 기자 활동을 통해 개인적 대면 기회를 가졌던 기업인들의 부류는 크게 세 가지다. 만남을 피하려다 어쩔 수 없이 시간을 내주는 은둔파가 첫째다. 둘째는 만나기는 비교적 쉬워도 자신의 말이나 이야기를 쓰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는 이들이다. 셋째는 만남과 대화의 경계를 일정 수준까지 낮추긴 하지만 그래도 언행에 조심하는 그룹이다. 때문에 극소수를 제외하면 기업인 취재에서는 허풍에 가까운 자기 자랑이나 타인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 날선 단어 등을 찾아보기 힘들다. 경제부 기자들의 취재 노트에서 강한 임팩트나 화제가 될 이야깃거리가 많지 않은 이유는 이런 배경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정치의 세계는 딴판이다. 자신의 부음 기사만 아니면 정치인은 이름 석 자가 전파를 타거나 활자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이들이 쏟아내는 말로 뉴스판은 늘 시끌벅적하다. 화급한 국가 현안이 건, 개인의 사적인 행동에 관계된 것이 건 이들의 말 잔치는 영역을 가리지 않는다. 제대로 알지 못하고 끼어들어 화를 부르거나 자신의 무지와 억지가 들통나도 개의치 않는다. 부적절한 처신이 얼마나 사회를 분열시키고 혼란을 더 키워 국가 에너지를 낭비하게 했는지에 대한 반성과 자제는 기대하기 힘들다.
무안공항의 여객기 사고가 발생한 지난달 29일 이후 12일이 지났다. 179명의 희생자를 낸 대참사의 정확한 원인 규명을 위한 후속 작업이 빠르게 진행 중이지만 사고의 아픔과 충격이 워낙 커 국민의 뇌리에서 쉽게 지워질 리 만무하다. 악몽은 가슴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다가 잊을만하면 고개를 들 가능성이 크다.
참사 이야기로 글 타래를 풀게 된 것은 정치인들이 앞다퉈 무안으로 달려가 대책을 촉구하고 유족을 위로하는 과정에서 나온 우원식 국회의장의 발언 때문이다. 우 의장은 30일 “충분히 생명을 구할 수 있음에도 이런 일이 생긴 것은 인재(人災)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 의전 서열 2위의 정치 지도자로서 국민의 아픔을 함께하고 국가가 바른길로 갈 수 있도록 진력해야 하는 그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할 말이었다. 유족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는 지도자의 마음과 자세에는 한 점의 과장도, 가식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재로 봐야 한다”는 말이 왜 대뜸 나왔을까. 사고 원인에 대한 추측이 난무하는 초기 상황에서 인재 단정 발언이 조종사 등 승무원의 잘못으로 해석될 여지가 다분했음을 그는 몰랐던 것인가. 조종사 등의 잘못이 아니라고 해도 ‘인재’라는 단어가 정비 불량, 지상 관제사들의 착오, 태만 등으로 외부에 인식될 수 있음을 깜박한 것일까. 대다수 전문가들은 참사의 여러 원인 중 조류 충돌로 인한 불가항력의 엔진 고장을 처음부터 주목했다. 엔진에서 새털이 발견되자 국토교통부도 이런 가능성을 최근 인정했다. 세계 어느 공항에서도 본 적 없다는 로컬라이저 밑의 콘크리트 둔덕이 피해를 키웠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철새 도래지가 인근에 4개나 되는 곳에 공항을 유치하는 데 앞장선 지역 정치인들의 무지와 과시욕이 참사 원인을 잉태하고 있었음도 밝혀졌다. 파일럿 출신의 한 유튜버는 최근 “사고기의 기장과 부기장은 충돌 직전까지 최선을 다하려 했다”며 “최고의 동체 착륙이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참사가 인재였다면 인재의 근본 원인은 철새 천국 옆에 공항을 끌어당긴 정치인의 빗나간 욕심과 행정 당국의 태만, 무지 등에 있다고 봐야 한다. 유명을 달리한 승무원들도 피해자일 수 있다. 정치인의 말 한마디가 피해자를 애꿏게 국민적 원망의 대상으로 만드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나라의 미래와 국민의 행복을 걱정하는 정치인의 입이라면 여기에서 나올 말들은 따뜻하면서도 신중해야 한다. 국민의 존경 대상인 입법부 수장의 처신과 언행은 더 말할 나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