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망가진 해외대체투자, 국제중재 찾는 투자사들

대체투자 손실에 난감한 금융사들
부실 발생한 투자건 들고 로펌 노크
해외 소송 대비 짧은 기간·기밀 보장에 의뢰 늘어
  • 등록 2024-02-11 오전 8:30:00

    수정 2024-02-13 오전 12:20:28

[이데일리 마켓in 지영의 기자] A자산운용은 기한이익상실(EOD)이 발생한 대체투자건들을 들고 국내 로펌 국제중재 전담팀을 찾았다. 만기가 도래했음에도 회수가 불가능해진 투자건이 적지 않은 상황. 해외 딜 중 계약상 의무 불이행 및 위법성 등을 다퉈볼만한 소지가 있는 건들을 국제중재 제소를 통해 만회해보기 위해서다.

국내 금융사들이 수년간 쓸어담아왔던 해외 대체투자건들이 줄줄이 회수가 막히면서 잇따라 다툼이 불거지는 모양새다. 부실 누적으로 곤란해진 국내 금융사들이 손실 만회 수단 중 하나로 국제중재를 찾기 시작했다.

해외 대체투자금 날릴 위기, 잇따라 국제중재 검토

11일 투자은행(IB) 업계 및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금융사및 투자자들이 해외 대체투자건과 관련된 국제중재 제소 문의로 로펌 문을 두드리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대체투자건 중에서도 주로 해외 상업용 부동산 및 인프라 투자 관련된 사안이 주를 이룬다는 전언이다. 딜을 설계한 해외 IB 및 자산보유자 등을 상대로 현지 소송을 진행하는 것 보다 용이한 선택지라 검토하는 곳이 늘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한 로펌 국제중재 전담 변호사는 “특히 최근 1~2년 사이 해외 부동산, 인프라 투자건과 관련된 금융사나 기관투자자 문의가 급격히 늘어난 편”이라며 “자산 회수가 곤란한 상황에서 문제점이 발견됐어도 현지 소송이 쉽지 않다보니 국제중재를 찾는 것”이라고 전했다.

국제중재는 법과 제도가 다른 국제 거래 및 투자 분쟁 당사자들이 중립적인 중재인을 선임해 판정받는 절차로 ‘대체적 분쟁해결수단(ADR)’으로도 불린다. 국제중재를 통해 받는 중재판정은 법원의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가진다. 중재는 단심재로 진행되기에 통상 3심까지 올라가는 일반 소송 대비 다툼 기간이 짧다. 대한상사중재원에 따르면 평균적인 국제 분쟁 중재 기간은 약 310일 안팎이다. 그만큼 이해관계 조정에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특히 모든 심리 과정이 비공개로 진행되고, 자료 기밀이 유지되기 때문에 중재 진행에 대한 사실 공개 부담이 적은 편이다.

국제중재에 대한 문의가 늘어난 배경은 청산 시기를 훌쩍 넘기고도 발이 묶인 자산이 늘었기 때문이란 평가다. 최근 수년 사이 해외 부동산 투자는 과열가도를 달렸다. 지난 2018년부터 지난해 연말까지 공·사모를 합쳐 늘어난 설정액 증가 금액만 38조원에 달한다. 과열 시기에 설정된 대부분의 해외 대체투자 펀드가 만기를 넘겼지만 대체자산 가격 하락에 청산이 불가능한 상태다. 자산가치 폭락에 현지에서 받은 대출금 보전에 시달리다 끝내 경매로 넘어가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 그때는 ‘괜찮은 투자’...지금 와선 왜 다툼 대상으로 전락했나


업계 일각에서는 국내 IB들이 딜 검증 역량이 부족했던 점을 대체투자 관련 국제중재 시도 증가의 배경으로 꼽는다. 세부 조건을 검증해보면 불합리한 조건이 있던 걸 모르고 들여왔다가 청산이 막힌 시점에 와서야 발견하고 국제중재 명분으로 삼게 됐단 지적이다.

한 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초창기에 대체 투자 쪽 인력을 급하게 꾸릴 때 전문성이 없는 인력이 급조하게 배치된 사례도 적지 않았다”며 “예를 들면 넘쳐나던 채권 운용역을 데려다가 대체투자 파트로 급조해서 옮기는 식이었다. 실무적인 부분에서 문제가 안 생길 수 없는 여건이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실제 투자 시점에 제대로 검증을 못 했다가 만기에 이르러서야 딜 구조가 비정상적으로 설계됐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례가 속속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B자산운용 등 국내 IB가 끌어온 미국 발전소 투자 건이다. 해당 딜은 일반적인 프로젝트파이낸싱(PF) 구조인양 국내 투자자들에게 판매됐다. 그러나 통상 메자닌에게 있는 담보권이 선순위에게 있는 구조로 짜여진 딜이었단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기관투자자는 호언장담했던 운용사 탓을 하고 싶고, 운용사는 갑과 소송해서 유리할 점이 없으니 책임소재를 해외로 돌리는 그림이 국제중재로 나오는 것 같다”며 “시간을 끌자는 의도도 없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최근 해외 부동산 관련해 문의 오는 건이 부쩍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제소로 이어질 수 있을만한 사례는 적다”며 “국내 투자자에게 불리한 건이긴 해도 대부분 귀책 사유가 계약 구조나 조건을 제대로 판별하지 못한 국내 금융사나 투자자 쪽에 있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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