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이데일리 조용석 기자] 2022년 6월 이정원 당시 국무조정실 규제조정실장이 2차장(차관급)으로 임명됐을 때 많은 이들이 놀랐다. 2차장이 경제분야 조정을 담당하기에 통상 기획재정부나 산업부 출신이 맡았던 것과 달리, 국조실 출신인 이 차장이 임명됐기 때문이다. 더 큰 변화는 1차장 산하 규제조정실 업무가 모두 2차장 산하로 이동한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6월 대통령령(국조실과 그 소속기관 직제)을 바꿔 정식으로 규제조정실장을 2차장 산하로 바꾸고 기존 2차장 산하에 있던 사회조정실장 등은 1차장 산하로 변경했다. 차관급 인사로 중앙부처 조직이 개편된 매우 희귀한 사례다. 관가에서는 규제개혁을 핵심과제로 잡은 윤석열 정부가 그에게 거는 기대와 믿음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한다.
|
자타공인 ‘최고의 규제 전문가’로 꼽히는 이 차장은 그동안 기존 관행을 깨면서 규제 관련 주요보직을 두루 거쳤다. 2013년 규제총괄과장을 맡았던 그는 이듬해 고위공무원 나급(국장급)으로 승진하면서도 같은 규제실 소속 규제혁신기획관(국장급)으로 임명됐다. 승진 첫 보직은 다른 실(室)로 이동하는 국조실 인사관례를 깬 것이다. 또 2020년 9월 규제총괄정책관(국장급)에서 실장급으로 승진할 때도 바로 규제조정실장이 됐다. 국조실 관계자는 “조직이 인사에서 이만큼 배려했다는 것은 이 차장이 규제개혁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해외파견·교육훈련도 모두 규제에 포커스를 뒀다. 2010년에서 2012년까지 3년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국 규제정책과에 파견돼 해외 규제동향 등을 연구했다. 또 2014년 국장급 승진 이후 교육훈련도 통상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이나 국방대학교가 아닌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규제연구센터에서 했다. 국장급 교육훈련을 KDI 규제연구센터에서 한 이는 현재까지도 이 차장이 유일하다.
그는 교육훈련을 한 KDI 규제연구센터의 산파 역할도 했다. 2014년 당시 정부는 규제비용총량제‘(Cost-In, Cost-Out)’를 도입하기 위해 규제비용을 분석·검증하는 연구기관이 필요했는데, 이 차장은 KDI 산하에 경제분야 규제비용을 분석할 센터를 설립하기 위해 동분서주 뛰며 예산확보 등에 성공했다. 이때 만들어진 KDI 규제연구센터는 규제연구실로 이름을 바꿔 여전히 규제영향분석 적정성 검토 및 제도 연구 등을 수행하고 있다.
윤 정부가 출범 후 새 ‘규제혁신 추진방향’도 이 차장이 주도했다. 대통령 주재 규제혁신전략회의, 덩어리 규제를 깨기 위한 민·관·연 합동 규제혁신추진단, 규제심판제도 신설도 모두 이 차장이 큰 틀을 짰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5월 말 취임 후 한 달도 안 된 시점에서 규제시스템을 과감하게 발표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차장에 대한 큰 신뢰가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이 차장은 한 총리가 2004년 국무조정실장(장관급) 역임할 당시에는 장관실 비서관(과장급)으로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경력도 있다. 규제실 관계자는 “총리님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규제 관련 궁금증이나 아이디어가 있으면 이 차장에게 보낸다”며 “규제 관련 한 총리의 관록에 맞춰서 대답할 수 있는 유일한 관료일 것”이라고 말했다.
|
규제개혁을 위해 이 차장을 중용한 윤석열 정부는 취임 이후 약 1700여건의 혁신과제를 완료했고 이에 따른 경제효과를 약 100조원에 규모로 추산한다.
이중 지난해 정부가 산업단지 입지규제를 개선하자 포스코가 4조원 대의 투자계획을 발표한 것은 이 차장의 아이디어와 추진력이 큰 원동력이 됐다는 후문이다. 포스코는 광양제철소가 있는 광양 산업단지에 흑연전극봉사업, 블루수소 생산, 니켈 수산화 침전물, 2차전지 사업 등을 하고 싶었으나 철강 관련 산업 입주만 허용하는 산업입지법으로 인해 수년째 실행하지 못했다. 산업입지법을 담당하는 국토교통부는 추후 ‘대기업 특혜’라는 부정적 시선을 우려해 매우 주저했다. 이에 국조실과 국토부가 공동 추진하고, 총리가 직접 현장을 찾아 규제개선을 발표하는 형태로 부담을 덜었다. 해당 규제개선에는 산업입지법 시행령 1건 개정 및 별도의 유권해석 1건이 전부였으나, 조 단위 투자가 발생한 것이다.
국조실 관계자는 “사실 규제가 해제되는 부처에서는 이를 꺼리는 경우가 많고, 해당 분야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어 해박한 지식이 없으면 오히려 설득되는 경우가 많다”며 “이 차장만큼의 경험과 실력이 없다면 부처 간 조율 및 명확한 판단을 해주기가 매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
내부에서는 새로운 과제를 만나면 피하기보다는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해결하기를 즐기는 그의 성격이 규제개혁에 딱 맞는다는 평가도 한다. 종종 그를 처음 만난 사람들이 늘공(직업공무원)이 아닌 어공(어쩌다 공무원)으로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 이 차장은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지상파 방송사 PD 시험도 응시해 최종단계 직전에 고배를 마신 경험도 있다고 한다. 국조실 내부에서는 “아이디어도 많고 창의력이 좋아서 PD를 해도 잘했을 것”이라며 “지금은 아이디어·창의력을 규제개혁에 사용하는 것 같다”고 웃었다.
국조실 내부에서는 그를 친근한 ‘동네형’이라고 부른다. 수습 사무관부터 직위를 가리지 않고 소통하고 친해지면 형·동생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아서다. 조직에 대한 애정이 큰 만큼 주위를 잘 챙긴다. 또 다른 국조실 관계자는 “정부서울청사에서 보고를 받다가 후배들이 세종행 KTX를 탈 시간이 늦어지면 빨리 서울역으로 가라고 자신의 관용차를 내준다”며 “최근에도 밥을 사달라는 수습사무관들을 만나 밤늦도록 술잔을 나누며 격의없이 소통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