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지현 기자] “귀농을 하고 보니 비가 오기 전에 심어야 할 것, 비가 온 후 심어야 할 것이 따로 있더군요. 자연의 지혜를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30년 군사 전문가에서 귀농 전문가로 전업한 김규남(63)씨는 인생 2막을 이같이 소개했다.
그는 대학에서 ROTC로 군생활을 시작해 51세에 대령으로 전역했다. 이후 한 대학의 군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군에서 있을 때보다 더 바쁜 나날을 보냈다. 오전 5시30분에 일어나 오후 11시까지 학생들의 교육훈련을 맡았다. 군에서 있을 때보다 더 힘든 상황에 몸엔 빨간불이 들어왔고 4년 만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는 “내가 좋아하고 오랫동안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살면 행복할 텐데, 그렇지 않으면 악몽이 될 수 있겠구나를 느꼈다”고 털어놨다.
| 제14회 이데일리 전략포럼 연사로 나서는 김규남 작가가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이영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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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을 회복하고자 치유농장을 계획했다. 그리고 숨 쉴 곳으로 춘천을 택했다. 강릉이 고향이었지만, 인생에서 가장 춥고 배고팠던 대학시절을 보낸 제2의 고향을 그가 다시 돌아갈 곳으로 정한 것이다. 그리고 무턱대고 토지 1만㎡(4000평)을 매입했다. 젊은 시절 빈털터리에서 시작해 나만의 땅을 가지게 됐다는 생각에 가슴 벅찼지만, ‘큰 실수’라는 걸 알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시골인데다, 땅덩이도 작지 않아 팔려고 해도 이젠 팔리지 않는 땅이 돼서다. 건축비가 없어 귀농인의 꿈인 나만의 집을 짓지 못한 건 가장 잘한 일이었다. “온 가족의 원하는 것을 모두 포함해 지은 귀농 하우스가 부동산 시장에 넘쳐나고 있다”며 “지역에 적응하지 못해 떠나려고 해도 팔리지 않아 발이 묶이고 가족 갈등까지 겪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그럴 일이 없지 않으냐?”고 말하며 웃었다.
집을 안 지은 대신 춘천 도심에 원룸을 마련해 농촌으로 출퇴근한다. 서울에 있는 가족을 만나러 가는 것도 대중교통으로 1시간여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는 이를 ‘멀티해비테이션’이라고 표현했다. ‘여러 개’를 뜻하는 ‘멀티(multi)’와 ‘주거’를 뜻하는 ‘해비테이션(habitation)’을 합친 말이다. 도시와 농촌 등 다른 지역에 2개 이상의 집을 마련해 양쪽 모두 거주하는 주거 트렌드다.
그는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주식시장의 조언처럼 언젠가 돌아갈 도시의 집을 남겨놓지 않고 귀농·귀촌에 올인한다면 대박 혹은 쪽박이 될 수 있다”며 “도시에 집은 두고 마음만 가지고 가라고 권하고 싶다”고 조언했다.
| 김규남 작가가 귀농 8년만에 흰 피부가 구리빛이 됐다며 개인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은 귀농 초기 모습이다. (사진=김규남 작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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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응용식물학 박사를 한 건 북한의 산림녹화를 위해서였다. 그런데 귀농에 더 큰 도움이 됐다. 아카시아 나무와 밤나무가 우거진 한계농지였던 곳을 일궈 도라지와 더덕, 음나무 등을 심었다. 몇 년 전부터는 수확의 기쁨도 누리고 있다. 팔면 돈이 되지 않을까? 그는 “귀농은 절대 돈이 안 되는 일”이라며 “좋아하는 일을 찾고 행복을 찾아야 한다. 욕심을 내기 시작하면 힘들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역에 자리 잡으면 도움을 줬던 이들과 나눔 하며 기쁨을 2~3배로 키우고 있다. “스스로 행복을 느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행복을 나누는 것도 중요하더라”며 “인생 1막은 내가 행복한 걸 했다면 2막은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걸 하면서 다른 사람도 행복하게 하는 걸 하는 게 맞지 않겠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리하게 투자하고 욕심내면 실패를 안고 있는 것”이라며 “나만의 놀이터에서 일과 삶이 조화를 이룬다면 그 모습이 주변에서도 보기 좋고 자식들에게도 좋다”고 귀띔했다.
| 사진은 김규남 작가가 농장에서 바라본 노을 모습이다.(사진=김규남 작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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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270m 고지에 있는 자신의 공간을 춘천에서 최고 노을이 멋진 곳이라고 소개하는 그는 오는 21일과 22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리는 제14회 이데일리 전략포럼 ‘인구절벽 넘어, 지속 가능한 미래로’의 특별세션 ‘행복하고 건강하게’에서 신계숙 배화여대 교수와 행복 전도사로 나선다. “귀농에 후회는 없습니다. 지금이 바로 인생의 황혼기입니다. 무엇을 이뤄가는 과정이지요. 그게 더 아름답지 않은가요?”
● 김규남 작가는
△1961년 강원도 강릉 출생 △강릉중앙고 졸업 △강원대 농공학 학사 호남대 행정학 석사 상지대 응용식물과학 박사 △1984 ROTC 22기 2011년 12월 대령 전역 △2012~2015년 신성대 군사학과 학과장 및 대외협력처장 △2016~2017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운영위원회 간사 △2017~2022년 강원도청 군관협력전문관 △강원연구원 통일국방센터 연구원 △저서 ‘은퇴 없이 농촌 출근’ 시집 ‘완당의 겨울’, ‘내 소원 뭐냐 하시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