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어제 윤석열 대통령의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 전면 불참했다. 윤 대통령의 해외 순방 중 비속어 논란과 검찰·감사원의 전방위적 수사·감사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며 응하지 않으면 시정연설을 보이콧하겠다고 예고한 대로다.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제1야당의 시정연설 거부다. 민주당 의원들은 본회의장 입장 대신 로텐더 홀에서 피켓 등을 들고 규탄 시위를 벌였다. 대통령·국회의장단·여야 대표단이 함께하는 사전 차담회 역시 거부됐다.
민주당의 시정연설 거부는 협치의 싹을 자른 부끄러운 기록이다. 시정연설은 보이콧 운운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헌법 제81조에 보장된 대통령의 국회출석 발언권이자 국회법 제84조의 절차에 따른 것이다. 또한 보통 1년에 한 번, 대통령이 국회에 예산안을 제출할 때 나라 살림과 관련한 정부의 주요 정책과 자신의 생각을 국민 앞에 밝히는 연설이다. 국민의힘이 보이콧을 “국회법상 책무마저 저버린 행태”라고 비판한 것은 이런 근거에서다.
“국회 무시 사과하라” “야당 탄압 중단하라”는 민주당 의원들 주장에 공감하는 국민도 물론 적지 않다. 하지만 시정연설 거부의 명분으로는 보기 어렵다. 더구나 이번 시정연설은 민주당도 2개월 전 합의한 일정이다. 윤 대통령이 “시정연설에 추가조건을 붙인다는 것은 헌정사에서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지만 정치적 이슈와 연결지을 일도 아니다. 대장동 사업 및 불법 대선 자금 의혹으로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최측근이 구속되고 민주연구원 압수수색이 실시되자 민주당 분위기가 급변했을 뿐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2017년 11월 시정연설 때도 당시 야당인 한국당 의원들이 검은색 옷에 ‘근조’리본을 달고 본회의장을 지킨 것과 대조적이다.
국정감사 마지막 날 압수수색 강행으로 야당을 자극한 검찰도 비판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 대표와 측근 등에 대한 수사를 당을 향한 압박으로 혼동해 국회의원의 기본 책무를 저버려선 안 된다. 행여 예산안 심의와 민생 입법 등의 논의를 늦추거나 외면해서도 곤란하다. 경제 위기의 불안에 떠는 국민 앞에서 진짜 해야 할 일은 극한 대치를 멈추고 민생 안정을 위해 손을 맞잡는 일임을 여야는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