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돌려막다 결국 파산까지’...빚 늪에 빠진 서민들

지난해 파산신고 5만건...2년전 비해 16% 증가
은행 안되니 카드사ㆍ저축은행ㆍ대부까지 손벌려
  • 등록 2022-06-24 오전 5:00:00

    수정 2022-06-24 오전 5:00:00

[이데일리 전선형 서대웅 기자] 카드빚에 시달리던 40대 자영업자 A씨는 얼마전 개인파산을 신청했다. 3년 전 직장을 그만두고 음식점을 개업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 바이러스사태가 터졌고, 팬데믹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궁지에 몰렸다. 가계 운영 때문에 받은 은행대출은 채무유예 조치를 받았지만, 생활비는 어쩔 수 없이 카드론으로 충당해야 했다. 카드론 상환이 다가오면 저축은행에서 신용대출을 받아 가까스로 돌려막기를 해야했다. 빌린 자금은 3000만원이지만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개인파산을 선택했다.

최근 A씨처럼 빌린 돈을 갚지 못해 파산을 신청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은행 빚은 카드사 카드론으로, 카드론은 저축은행과 대부업체 대출로, 일명 ‘대출 돌려막기’를 하다 결국 감당이 어려워진 것이다. 설상가상 최근엔 금리까지 오르면서 이자까지 불어나 이들의 부담이 더 커지고 있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 자영업, 직장인까지 파산신청 고려


23일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개인파산사건은 총 5만379건으로 집계됐다. 직전년도(4만5642건) 대비 4737건이 증가했고, 2019년에 비해서는 16%(6977건)가 불어났다. 개인파산은 빚을 갚을 능력이 없고 소득도 없는 채무자가 선택하는 제도다. 재산보다 채무가 많을 때 재산을 모두 처분해 채무를 변제한 뒤 남은 부분은 탕감받게 된다.

지난해 개인파산신고가 늘어난 건, 코로나19 영향이 크다. 사회적거리두기 시행으로 지난 2년간 자영업자는 장사를 거의 하지 못했고, 기업경영이 어려워지면서 직장을 잃은 사람이 늘면서 대출금을 감당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법원 관계자는 “올해 통계는 아직 나오지 않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문의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봐선, 신청 건수가 작년보다 많을 것으로 보인다”며 “최근 코인ㆍ주식 시장이 폭락하면서 2030 MZ세대의 파산 신청이 많이 증가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서울시복지재단이 지난해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를 통해 개인파산신청을 한 사례를 분석한 결과, 파산 신청자의 83.2%는 파산 당시 무직이었지만, 이 중 절반(54.2%)은 파산 신청 3년 전까지 임금 근로나 자영업 형태의 소득 활동을 한 사람들이었다.

채무상환이 불가능하게 된 원인에 대한 답변으로는 ‘소득보다 채무(원리금)가 늘어남’이 32.8%로 우선 순위를 차지했다. 특히 파산자들의 대부분은 은행뿐만 아니라, 2금융ㆍ대부ㆍ사채까지 다중채무를 지고 있었다. 지난해 파산 신청자들의 61.4%가 채권자수 4명 이상이라고 답했다.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는 상환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무분별한 대출이 파산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생활고로 인해 빚을 내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최근엔 젊은 층에서 코인 등에 투자로 손해가 나면서 파산이나 회생 등을 문의하는 사람이 나오고 있다”며 “빚이라는 게 한번 갚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다른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해 돌려막고 점점 빚의 규모가 늘어나게 돼 결국 파산으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고금리에도 2금융사·대부업 대출 증가세


더 심각한 것은 고금리 상황에서도 저신용자 급전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현실이다. 지난 5월 말 기준 7개 카드사(신한ㆍKB국민ㆍ삼성ㆍ현대ㆍ롯데ㆍ우리ㆍ하나) 대출잔액은 47조2074억원으로 전달에 비해 9326억원이 늘었다. 지난해 12월 말과 비교해서는 1조8103억원이 증가했다. 이중 카드론은 5월말 기준 잔액이 34조5816억원으로 지난해 말과 비교해 1조5547억원 늘었다. 저축은행 대출잔액도 올해 4월 말 기준 110조4392억원으로 지난해 12월 말과 비교해 10조원이 증가했다. 특히 최후의 급전 수단으로 불리는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리기 위해 의뢰한 신용조회 건수(중복 조회 포함)가 지난 4월 1만4769건으로 지난해 평균(1만2482건)건수보다 18%가 증가했다.

‘빚투(빚을 내서 투자)’ 현상도 계속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신용거래융자잔고는 지난 22일 기준 19조8546억원이다. 증시가 하락하면서 소폭 줄긴 했지만, 지난 2020년 12조원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해서는 여전히 높다.

반면 고신용자(1~2등급)들이 주로 이용하는 은행들의 대출 수요는 감소하고 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에 따르면 이들 은행의 지난달 말 가계대출 잔액은 701조615억원으로, 지난해 말 대비 7조9914억원 감소했다. 신용대출 잔액은 131조7993억원으로, 지난해 12월(139조5572억원)부터 6개월째 줄었다.

김상봉 한성대학교 교수는 “앞으로 코로나19 대출 만기연장 등의 제도가 9월에 종료되면 개인파산이나 회생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서민금융을 넘어 재정으로 해결하든지, 법적 테두리 내에서 해결해주는 방법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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