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종전선언 집착 말라…한일관계 개선이 먼저"

[신년 특별인터뷰]①
'국제정치 대가' 이안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회장
반도체 공급망 재편 보듯…안보화 하는 경제
韓 차기 정권, 쿼드와 함께 하는 방안 찾아야
北 핵 포기 없을 것…韓 독자 대북정책 어렵다
  • 등록 2022-01-01 오전 3:00:00

    수정 2022-01-01 오전 3:00:00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지난해 4월 12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 반도체 공급망 회의를 직접 주재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삼성전자(005930), TSMC, 인텔, 마이크론 등을 모아놓고 공격 투자를 당부했다. 더 실질적인 의미는 중국이 아닌 미국에 투자하라는 것이었다.

미국은 2000년대 들어 반도체 생산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높은 마진을 올리는 설계에 주력했다. 퀄컴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갑자기 직접 생산에 나서겠다는 건 하나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반도체 공급망을 ‘경제’가 아닌 ‘안보’의 문제로 전환한 것이어서다. 회의를 주도한 인사도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었다. 삼성전자 등은 점차 경제가 안보화(化) 하는 것을 체감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미중 사이에 끼인 한국에게 정교한 외교는 생존의 조건이 됐다. 올해 대선 시대정신도 ‘경제 안보’ 문제를 어떻게 풀지에 있다는 평가가 많다.

세계 최대 정치 컨설팅 싱크탱크 유라시아그룹의 이안 브레머 회장. (사진=브레머 회장 제공)


“한국은 한반도 밖의 많은 이슈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차기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역할입니다.”

세계 최대 정치 리스크 컨설팅 싱크탱크 유라시아그룹의 이안 브레머(52) 회장의 조언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지정학적으로 취약한 한국은 나라 밖 경제 안보 이슈에 소홀하면 언제든 표류할 위험에 처해 있다.

이데일리는 브레머 회장과 연말 즈음한 지난달 20일(현지시간) 전화를 통해 신년 특별 인터뷰를 했다. 그는 특정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주요 정부와 기업 리더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하는 것으로 유명한 국제정치의 대가로 꼽힌다. 한국 정부 역시 자문을 구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한국, 쿼드 참여 못한 건 엄연한 현실”

-글로벌 경제 안보의 개념이 강해지고 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쿼드(QUAD·미국, 일본, 인도, 호주 등 4개국 비공식 안보회의체)부터 봐도 그렇다. 코로나19 백신 확보, 새로운 인프라 프로젝트를 위한 자금 조달, 군사 안보 협력, 기밀 정보 공유 등에 대해 4개국 간 외교가 활발해지고 있다.

-한국은 미중 사이에 끼어 있다.

△한국이 중국과 맺는 경제 관계의 중요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한반도 안보 문제 역시 중국이 중요하다. 한국 입장에서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해) 더는 중국과 협력할 수 없는 처지가 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중국 이슈는 지난해 5월 한미 정상회담 때 (의견 일치가 잘 이뤄지지 않는) 주요 난제였다.

-한국은 고민이 크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을 모두 택하려 함으로써 미국 중심의 동맹 이너서클에 끼지 못하는 리스크를 안고 있다. 예컨대 바이든 대통령의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을 한국은 지지하지 않고 있다. 미국과 동맹국들 사이의 긴밀한 관계와 반대되는 것이다.

-한국은 올해 3월 대선을 앞두고 있다.

△(일본을 포함한 미국 중심의 경제 안보 이너서클에 들어가느냐, 현재 외교 기조를 유지하느냐에 대해서는) 올해 대선에 달렸다고 본다.

-차기 정권에 현실적인 조언을 한다면.

△미국은 한국을 매우 중요한 나라로 본다. 무엇보다 미국 지상군이 주둔하고 있지 않나. 한국의 경제적 성공과 문화 파워는 잘 알려졌다. 지난해 가요, 영화, 드라마 등에서 엄청난 성과를 냈다. 그러나 한국이 쿼드에 참여하지 못한 것도 현실이다. 한국은 쿼드와 함께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쿼드 4개국에 한 나라만 추가하는 건 어렵다. 그래서 캐나다와 한국이 동시에 가입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캐나다도 쿼드에 들어가야 하는 나라로 여겨진다. 그런데 전제가 있다. 한국이 일본과 관계를 개선하기 전에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한일 관계 개선은 어떻게 보는가.

△차기 한국 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가 한일 관계 개선이다. (미국의 동북아 정책은 항상 한미일 삼각구도에서 나왔다.) 미국의 가장 중요한 아시아 동맹이 한국과 일본인데, 둘의 관계가 좋지 않은 건 말이 안 된다. (한국과 일본은 1998년 당시 ‘김대중-오부치 선언’ 이후에는 이렇다 할 관계 개선 사례가 없었다.)

-한일은 역사 문제가 걸림돌이다.

△두 나라의 젊은이들에게 역사보다 중요한 문제들이 있다. 기후 변화, 코로나19 사태, 경제 체제 문제, 젠더 문제 등이다. 이들은 기성세대가 이런 문제를 두고 풀어낼 능력이 없다고 본다. 두 나라가 비슷하게 느끼는 지점이다. 이를 협력의 동력으로 활용하는 게 모두에게 이익이다.

“한일 관계 개선, 차기 정부 최대 과제”

-한국은 중국의 보복이 두렵다.

△그래서 쿼드가 중요하다. 쿼드가 강력한 건 일본, 호주, 인도가 함께해서다. 이들은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는 걸 우려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차기 한국 대통령에 조언을 한다면.

△한반도 바깥의 이슈에 더 많은 관심을 쏟을 필요가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과 러시아에 정신이 팔려 있다. 미국 안에서는 인플레이션, 코로나19, 올해 중간선거 등이 있다. 한반도 문제에 관심을 둘 여력이 없다. 그렇지만 한국은 인도 태평양 지역에서 바이든 정부의 외교 우선순위를 지지하는 식으로 미국과 관계를 돈독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차기 대통령이 할 일이다.

-한국 정부는 종전선언에 집중하고 있다.

△종전선언은 상징적일 뿐이다. 오히려 섣불리 종전선언이 이뤄진다면, 향후 중국과 북한은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할 것이다. 미국은 이를 잠재적으로 한 번 발을 디디면 빠져나올 수 없는 길(as a potentially slippery slope)이라고 본다. 종전선언은 (한반도 비핵화, 상호 신뢰를 통한 전쟁 방지 합의, 북미 관계 정상화 등) 더 광범위한 평화협정의 일부가 돼야 한다.

-미국은 북한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북한의 문제는 핵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핵 폐기에 대해 진지하게 협상할 의지가 없다. (트럼프 정부 때인) 2018년 북미 정상회담은 실패했다. 이전 회담에서 결과를 얻지 못했는데, 바이든 대통령이 정상회담에 나설 이유는 없다.

-한국은 무엇을 할 수 있나.

△북한은 실질적인 안전을 보장받지 않는 이상 핵을 포기할 리 만무하다. 워싱턴과 평양이 개입하지 않으면 한국이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이안 브레머 회장은…

△1969년 미국 볼티모어 출생 △툴레인대 국제관계학 학사 △스탠퍼드대 정치학 석·박사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최연소 교수 △컬럼비아대 외래교수 △세계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 △미국외교협회 회원 △유라시아그룹 회장(1998년~)

이안 브레머 회장이 지난 2018년 출간한 뉴욕타임스(NYT) 선정 베스트셀러 ‘Us vs. Them’의 책 표지. 이 책은 한국에 ‘우리 대 그들’이라는 제목으로 2019년 출간돼 큰 인기를 끌었다. (출처=아마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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