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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제산업성(경산성)은 7일 이 같은 내용의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관보 게재 방식으로 공포했다. 시행세칙 성격의 포괄허가취급요령 개정안도 홈페이지에 올렸다. 일본은 공포한 지 21일 후인 28일부터 개정안을 실제 적용한다.
일본 기업은 28일 이후부터 1100여 가지 전략물자(군사 전용 가능성이 있는 품목)를 우리나라 기업에 수출하려면 일괄·포괄적으로 허가를 받는 대신 건건이 개별 허가를 받아야 한다. 단순히 수출 절차만 복잡해지는 게 아니다. 일본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허가를 늦추거나 막는 방식으로 우리 주요 산업의 부품·소재·장비 수급에 차질을 줄 수 있다. 전략물자가 아니더라도 일본 정부가 무기 개발 등에 사용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모든 품목은 별도 수출허가를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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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기업을 겨냥한 규제 품목 추가 지정은 없었다. 일본은 지난 7월1일 우리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3개 소재(플루오린 폴리이미드·레지스트·불화수소)를 개별허가 품목으로 지정해 양국 경제전쟁을 촉발했었다. 이번에도 특정 품목을 집어 규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일각에선 일본이 수위조절을 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언제 어떤 품목이든 규제 대상을 추가로 지정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개별허가 품목 지정을 반도체·디스플레이 3개 소재에 한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우리 정부의 태도 변화가 없다면 전략물자가 아니더라도 포괄 허가에서 개별 허가로 바꿔 규제할 수 있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개별허가 품목으로 지정되면 일본 경산성은 90일가량의 수출신청 심사 절차를 고의로 늦추거나 막판에 지출 서류 보완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수출을 막을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일본이 개별허가 품목을 지정하지 않았다고 해서 규제 수위를 낮춘 건 아니다“라며 ”언제 어떤 품목이든 개별허가로 전환하겠다는 의도를 던진 것“이라고 말했다.
한 기업 관계자는 ”일본 정부가 규제 품목을 늘리지 않은 게 당장은 다행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경영상 불확실성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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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국제 여론전에 대비해 명분을 쌓은 정황도 엿보인다. 전략물자 수출규제 체계 자체를 바꾼 게 그 근거다.
일본은 지금까지 전략물자 수출규제와 관련해 백색국가와 비백색국가 두 종류로 나눴다. 경산성은 이를 A·B·C·D의 네 그룹으로 세분화했다. 내용상 크게 달라진 건 없다. 과거 백색국가에 해당하는 A그룹엔 3년마다 재검토하는 조건으로 개별허가 절차를 그대로 면제해준다. 우리를 포함한 26개국이던 A그룹(백색국가) 대상을 우리나라만 뺀 25개국으로 줄인 것뿐이다. C그룹은 A·B·D그룹에 포함하지 않은 대부분 국가, D그룹은 북한, 이라크 등 10개국이다.
경산성은 명칭 변경 이유로 전략물자 수출관리 제도에 대한 국내외 실무·관계자의 이해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우리를 강등한 게 우리 대법원의 징용배상 판결 등에 대한 보복성 조치가 아니라 관리상 변화라는 걸 강조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치적 동기에 기초한 부당한 수출 규제라는 우리 정부의 논리에 반론을 펴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실제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은 7일 현지 언론과의 정례 브리핑에서 ”(한국의 백색국가 제외 조치는) 안보 관점에서 수출관리제도를 재검토한 것“이라며 ”한일 관계에 영향을 주려는 경제보복이나 대항 조치가 아니다“라며 기존 주장을 반복했다.
다만 일본의 이 같은 명분쌓기엔 한계가 있다. 아베 신조 일본(安倍 晋三) 총리의 기존 발언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참의원 선거운동 기간인 지난달 7일 한 방송에서 ”한국이 징용공 문제로 국제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은 명확하다“며 ”무역관리도 준수하지 않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사실상 보복 조치임을 자인했었다. 그는 이달 6일에도 ”한국이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을 일방적으로 위반하며 국제조약을 깨고 있다“며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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