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기생충'과 이미경 부회장의 뚝심

  • 등록 2019-05-29 오전 6:00:00

    수정 2019-05-29 오전 6:00:00

[이데일리 고규대 문화레저산업부장] 영화는 감독 놀음, 드라마는 작가 놀음이라는 말이 있다. 영화 ‘기생충’이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받은 황금종려상의 지분을 나눈다면 봉준호 감독의 몫이 대부분이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엔딩크레딧에 이름을 올린 ‘책임 프로듀서’(Executive Producer) 이미경 CJ 부회장의 지분을 빠뜨릴 수 없다. 이미경 부회장은 해외에서 통하는 한국영화를 만들겠다는 CJ그룹선봉에 서 지난 25년간 영화사업을 이끌었다.

CJ ENM 영화부문은 지난 2015년 1000만 이상 관객을 동원했던 ‘베테랑’ ‘국제시장’ 등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영업이익 60억원을 냈다. 이후 실적은 신통치 않았다. 지난 2016년 23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2017년에도 90억원의 적자를 냈다.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과 나영석 PD의 예능 시리즈가 연이은 성공을 거둔 것과 비교하면 굴욕적 성적이었다.

CJ ENM 영화부문의 성적은 공교롭게 이미경 부회장의 행보와 궤를 같이 한다. 영화의 투자·제작이 결정된 후 개봉까지 적어도 1년 남짓 시간이 걸린다. 이미경 부회장은 영화 ‘광해’ 등을 제작한 후 박근혜 정부로부터 퇴진을 종용받았다는 의혹 이후 2014년 질병 치료를 이유로 미국으로 건너가 일선 경영에서 물러났다. 이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 귀국했다. 그동안 영화부문은 침체를 겪다 이 부회장이 돌아온 후 숨통이 트여 1년이 지난 2018년 영업손실이 9억원으로 줄어들었다.

CJ ENM 영화 부문의 올해 성적은 괄목할 만하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3월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CJ ENM의 영화사업부문이 1~3월 전체영화 배급사별 관객 점유율에서 35.1%(1935만명)로 1위를 차지했다. CJ의 영화사업이 지난해 롯데에 밀리며 3위까지 떨어진 것으로 감안하면 ‘왕의 귀환’이라고 할 만하다. 올해 초 ‘극한직업’이 1600만 관객을 돌파한 데 이어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받으면서 반전을 노리고 있다.

‘기생충’은 황금종려상 수상 전부터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여왔다. CJ ENM 은 ‘살인의 추억’ ‘마더’ ‘설국열차’ 등의 투자배급을 맡아 봉준호 감독과 인연이 깊다. CJ ENM은 지난해 컨소시엄을 만들어 영화를 제작한 바른손이앤에이에 125억원을 투자했다. ‘기생충’은 스태프와 표준근로계약서를 쓰고 주 52시간 촬영과 아역 배우 보호를 위해 CG 촬영으로 대체하는 등 ‘착한’ 제작에도 도전했다. 완성된 후에는 이미경 부회장이 해외 세일즈를 직접 챙긴 덕분에 192개국에 선판매됐다. 이는 판매 국가 숫자 기준으로 역대 최고 해외 판매 기록이다.

이미경 부회장은 엔터테인먼트 투자를 결정할 때 현장을 먼저 이해하고 뚝심 있게 밀어붙이는 스타일로 알려졌다. 방송 부문 tvN이 론칭할 당시 “젊은 방송을 만들겠다면서 임원진이 홍대 분위기도 모르느냐”는 질책에 고위관계자가 줄줄이 홍대 클럽을 찾았다거나 트렌드를 감지하고 서울 성수동 일대에서 공연장으로 쓸 공장부지를 탐문했다는 일화도 있다. 영화 부문 역시 드림웍스 투자, 첫 멀티플렉스 CGV 설립 등 굵직한 결정에 이 부회장이 관여했다. 그 결과 CJ ENM은 ‘기생충’을 포함해 그동안 총 10편의 영화를 칸 국제 영화제에 진출시켰다. 한국 영화의 발전이라는 비전과 동기를 자극하고 모범적 행동으로 신뢰를 구축한 변혁적 리더십으로 위기에 빠졌던 CJ ENM 영화 부문을 살려낸 이미경 부회장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부디 영화가 가진 산업과 문화라는 두 가지 측면을 균형 있게 살펴 투자와 제작이 공생하는 한국 영화의 미래를 만들어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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