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전세 시세의 80%만 부담하고 최장 20년간 거주하는 장기 전세주택의 인기가 날로 치솟고 있다. 수요는 넘쳐나는데 공급은 갈수록 줄어서다. 하지만 당초 취지와 달리 중산층의 ‘로또’로 불릴 만큼 정책 실효성이 떨어져 제도 자체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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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서울시와 SH공사에 따르면 내년에 서울에서는 시프트 총 1800여가구가 공급될 예정이다. SH공사 관계자는 “내년 하반기에 강서구 마곡지구 800가구와 양천구 목동 67가구를 비롯해 위례신도시 송파권역에도 일부 공급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강남 내곡·세곡지구를 제외하면 입주자 모집이 끊기다시피 했던 올해(775가구)보다 132% 늘어난 물량이다. 다만 시프트가 첫 선보인 2007년 이래 연간 평균 공급 물량(3307가구)에 비해서는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공급이 크게 위축된 것이다.
변창흠 SH공사 신임 사장의 취임도 건설 물량의 축소 전망을 부채질하고 있다. 대형 택지 개발 대신 낡은 집을 고쳐쓰는 도시 재생에 방점을 찍고 있어서다.
장기 전세주택은 LH(한국토지주택공사)도 짓는다. 하지만 LH는 2012년 말 서울 강남 등에 1004가구를 선보인 이후 신규 공급을 전면 중단했다. 내년에도 추가 건설 계획이 없는 상태다. 향후 장기 전세 공급은 아파트 재건축 과정에서 서울시가 조합으로부터 사들이는 연간 100~200가구에 불과한 매입 물량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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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좁아진 입주 문턱은 각종 편법을 낳고 있다. 개발 예정지의 철거민 집을 사들여 장기 전세주택 입주권을 받는 ‘딱지’ 거래는 인터넷을 통해서도 쉽게 그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자영업자 소득을 축소 신고하는 등의 방법으로 입주 자격을 끼워 맞추는 일도 부지기수다.
당시에는 투기 수요를 줄이는 좋은 취지였을 수 있다. 그러나 집을 사지 않고 전세로 눌러앉는 중·고소득층이 전세난의 근원으로 지목되는 지금, 최고 5억원을 웃도는 고가 전셋집을 초장기 임대로 공급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 주택 정책 연구기관 관계자는 “중·고소득층에게 공공 임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임대주택 재고 물량이 전체의 20%가 넘는 선진국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며 “임대 물량이 5%에 불과한 서울시가 소득 상위 10% 이하까지 입주할 수 있는 시프트를 공급하는 건 말도 안된다”고 말했다.
장기 전세주택은 재정 부담도 큰 편이다. 다달이 월세를 받는 일반 임대주택에 비해 투자비 회수 기간이 길고, 입주자가 낸 전세금도 향후 돌려줘야 할 부채로 인식돼서다. 서민 세금으로 중산층 주거비를 대는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기존 중대형 시프트를 분양 전환 등을 통해 처분하고, 공공은 국민임대 등 저렴한 주택 공급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서울시 관계자는 “고민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시장의 수요가 있는 한 공급을 유지하겠다는 것이 시의 기본적인 입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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