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마저 크레인에서…" 김진숙 지도위원의 두 번째 명절

용역업체 직원 100여명-버스 10여대 주변 에워싸
  • 등록 2011-09-12 오후 1:48:22

    수정 2011-09-12 오후 1:48:22

[노컷뉴스 제공] "지난 설날을 크레인 위에서 보낼 때만 하더라도 추석까지 여기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부당하게 해고당한 근로자들이 다시 일터로 돌아갈 수 있을 때까지, 그들 등에 있는 소금 꽃나무가 조금이라도 가벼워질 때까지… 싸울 겁니다."

한진중공업 대규모 정리해고 철회를 촉구하며 부산 영도 조선소 크레인에서 고공 농성 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50)이 지난 설에 이어 추석까지 크레인에서 명절을 보내게 됐다.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사진= 노컷뉴스
3.3제곱미터 규모로 간신히 성인 한 명이 들어갈 수 있는 85호 크레인.

남들은 풍성한 한가위를 맞아 여느 때보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김 위원은 35m 높이의 푸른빛 크레인에서 250일째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다.

"겨울, 봄, 여름을 맞는 동안 체력도 약해지고 많이 힘들었지만, 이제 괜찮습니다. 희망버스가 4번이 다녀가면서 노동자들의 처지를 이해해주시는 시민들이 많다는 것을 봤기 때문에 이번 추석은 외롭지 않아요. 다만 숨막히게 크레인을 에워싸고 있는 용역직원들이 더 마음을 옥죄어 오는 듯하네요"

지난 설과 달리 이번 추석엔 용역업체 직원 100여 명과 버스 10여 대가 조선소 주변을 에워싸고 있어 외부인 접근이 더욱 어려워졌다.

얼마 전 전태일 열사의 모친 고 이소선 여사의 영정이 희망버스를 타고 왔을 때도, 용역업체측이 버스로 조선소 인근을 막아서 가까이서 맞이하지 못했다.

여기다 추석 전 사측이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 극적인 타결이 될 줄 알았던 노사 협상이 결렬되면서 김 위원의 마음은 더욱 무겁다.

수개월에 걸친 총파업, 극적인 노사 잠정 합의,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협상과 갈등.

쳇바퀴 돌듯 평행선을 긋고 있는 노사 갈등의 원인에 대해 김 위원은 회사의 진정성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위원은 "임원들 연봉은 인상해주고 주식배당 챙기면서, 정리해고된 노동자들을 복직시킬 수 없다는 이중적인 태도가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는 것"이라며 "사측은 시간이 지날수록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지칠 것으로 착각하고 있지만,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것이고, 정당한 권리를 위해 힘을 더 모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김 위원의 생각에 '직접 해고 대상자도 아닌데 왜 제삼자가 개입하느냐'는 곱지 않은 세간의 시선도 있다.

이에 대해 김 위원은 자신은 "과거 한진 중공업의 모체인 대한조선공사의 해고자"라며 "고향집에 불이 났는데 불부터 꺼야지 불을 끌 자격이 있냐 없냐를 묻는 것이 속상하다"고 주위의 따가운 시선에 대한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먹고, 자고, 씻는 것조차 힘든 크레인에서 사계절을 보낸 김진숙 지도위원은 힘든 순간마다 노동자와 근로자가 있어서 버틸 수 있다고 한다.

"무겁게 영글어가는 소금꽃 나무를 짊어진 노동자.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 영도 조선소까지 내려와 응원해주는 시민들이 있어 버틸 수 있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마음을 해고된 한진중공업 모든 노동자들이 느낄 수 있을 때까지, 부당하게 해고당한 노동자들이 다시 일터로 돌아갈 때까지 여기에 있을 겁니다."

각 가정마다 송편과 만두를 빚으며 웃음꽃이 떠나지 않는 추석.

김 지도위원은 오늘도 홀로 크레인에서 갑자기 차가워진 가을바람을 맞으며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정리해고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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