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나라예산(약 200조원·2006년)의 5%가 넘는 12조원이 풀린 것. 정부의 ‘돈 잔치’ 덕에 개발예정지 인근 땅값은 치솟았고, 갈 곳 없는 보상금은 주변 지역과 강남 등 수도권 부동산 시장으로 몰렸다. 전문가들은 향후 2년간 예정된 30조원의 보상비가 아무 대책 없이 시장에 유입된다면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것’이라며 개발 사업의 속도와 규모 조절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방서 보상 받아 서울로, 서울로
지난해 판교신도시에서 논 600여평이 수용(收用)되면서 60억원대 ‘돈벼락’을 맞은 이주명(가명·61)씨. 그는 올 초 아들과 공동 명의로 서울 강남의 아파트와 송파구 신천역 근처에 5층짜리 상가 빌딩을 샀다. 그는 “이 나이에 농사짓기도 그렇고, 어디 투자할 곳도 없지 않으냐. 강남에 투자해서 손해 볼 일은 없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쏟아지는 각종 개발 계획 덕분에 목돈을 거머쥔 지방 지주(地主)들이 ‘수도권 투자’에 대거 나서고 있다. 교보생명 김창기 웰스매니저는 “수십억원씩 싸들고 와서 어떻게 굴리면 좋겠느냐고 상담하는 지주들이 적지 않다”면서 “땅이나 아파트를 사겠다고 야단”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평당 4000만원대의 고가 아파트인 서울 강남구 도곡동 렉슬, 역삼동 푸르지오 등은 소유주의 10%쯤이 지방 거주자다. 서울부동산경제연구소 최문섭 소장은 “전남에서 농지 보상으로 큰돈이 생긴 마을 주민들이 수도권에 땅을 사달라고 의뢰했다”고 말했다.
◆지주들 “부동산말고 투자할 게 없다”
우리은행 박승안 PB팀장은 “보상금 받아서 사업했다가 망한 사람도 많다”면서 “아파트와 땅, 자동차를 사고 남는 돈은 은행에 넣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보상금의 상당수가 서울·수도권에 사는 외지인에게 돌아가는 것도 문제. 판교의 경우, 전체 보상비(2조5000억원)의 61%가 외지인에게 돌아갔다. 50억원 이상 고액 보상금 수령자 중 서울 강남과 분당 거주자는 54명이나 됐다.
◆보상비 30조 이상 더 풀려 걱정
지난해 기업도시와 혁신도시로 잇따라 지정된 강원도 원주. 혁신도시 예정지 인근 땅값은 최근 2년 새 3~4배쯤 뛰었다. 평당 10만~20만원이던 논밭은 요즘 50만~60만원을 부른다. 충남 아산신도시 인근 지역은 불과 3년 전까지 평당 20만~30만원이던 논밭이 평당 200만~300만원으로 10배나 폭등했다.
행정도시가 들어설 충남 연기군은 3년간 땅값이 63%나 올랐다. 같은 기간 전국 평균 상승률(13%)의 5배쯤 된다. 충북 진천(혁신도시), 전북 무주(기업도시) 등도 20% 이상 올랐다.
전문가들은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말한다. ‘세중코리아’ 김학권 사장은 “내년부터 풀릴 보상비도 수십조원에 달한다”면서 “한껏 달아오른 부동산 시장에 기름을 부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건설교통부는 2007~08년에만 혁신도시(11곳) 4조원, 기업도시(6곳) 1조원 등 약 30조원의 보상비가 지급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부동산 컨설턴트 ‘RE멤버스’ 고종완 대표는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 신도시가 동시다발적으로 개발되면 보상비 문제가 악화될 수 있다”면서 “확실한 로드맵을 갖고, 계획의 우선 순위를 재점검해 규모와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