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폭염이 와도”…하룻밤 20t 쓰레기와 싸우는 환경미화원

지난 11일 환경미화원 동행 취재
쓰레기 5톤 수거 4번 왕복…“쓰레기 젖어 옮기기 힘겨워”
태풍·폭염 속 쉬는 날 없이…“명확한 규정 만들어져야"
‘발판’ 사용 불법이지만…할당된 쓰레기 수거하려면 ‘울며 겨자먹기’
  • 등록 2023-08-14 오전 5:17:00

    수정 2023-08-14 오전 5:17:00

[이데일리 황병서 기자] “태풍이 와도 소낙비가 내려도 쓰레기 수거는 계속됩니다.”

환경미화원 정진호(44)씨와 심재준(44)씨가 지난 11일 오후 9시께 서울 구로1동 한 주택가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다(사진=황병서 기자)
제6호 태풍 ‘카눈’이 물러간 지난 11일 오후 9시. 서울 구로구 구로1동의 한 주택가 앞에 5t(톤) 쓰레기 수거 차량이 멈춰 섰다. 연두색 안전 조끼와 헬멧을 착용한 환경미화원 2명이 상가 앞을 향해 냅다 뛰었다. 수북이 쌓인 일반 쓰레기를 수거 차량 안으로 던졌다. 금세 일을 마친 이들은 차량 뒤 설치된 발판에 올라탄 뒤 “형님 앞으로”를 외쳤다.

환경미화원 정진호(44)씨는 이날 이데일리와 동행취재에서 쓰레기 20톤을 수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5톤 쓰레기 수거 차량이 구로 1동의 아파트 단지 곳곳을 돌며 가다 서기를 반복했다. 정씨와 2인 1조인 동료 심재준(44)씨는 발판에 올랐다 내리기를 반복하며 쓰레기를 수거했다. 정 씨는 “비가 온 다음 날이라 쓰레기가 물에 젖어 있어 무게까지 나가 더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며 “명절하고 폭염, 태풍이 왔을 때가 우리에겐 정말 힘든 나날”이라고 설명했다.

쓰레기 수거 차량은 환경미화원 2명과 운전기사 김승호(55)씨가 함께 움직이는 방식이다. 일요일부터 금요일 저녁까지 주 6일로, 오후 9시부터 다음날 6시까지 근무를 이어간다. 쓰레기가 많이 배출되는 월·화·금요일은 5톤 차량으로 4번, 쓰레기가 덜 배출되는 화·수·목요일은 5톤 차량으로 3번 움직인다.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 날은 휴식 시간도 보장받기 어렵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통상 오전 3시께 1시간가량 밥도 먹고 쉬는 시간이 보장돼 있지만, 그날 할당된 쓰레기 수거를 하는 것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정씨는 “법적으로는 1시간 밥도 먹으며 쉴 수 있게 보장돼 있다”면서도 “20톤 쓰레기를 수거하려면 1시간 휴식 시간이 있으나 마나”라고 한숨을 지었다.

이들은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 속에 보호받지 못하고 있었다. 태풍 카눈이 서울을 지나갔던 전날 밤에도 쓰레기 수거에 나섰다. 구청 소속 환경미화원과 달리 하청 업체 소속 환경미화원 등은 언제 쉬어야 하는지에 관한 제대로 된 규정이 없기 때문이란 것이다. 정씨는 “소위 ‘빗자루(구청 소속 환경미화원 지칭)’는 자연재해와 관련해 정확한 규정이 있어서 언제 쉬어야 하는지 정해져 있다”면서도 “우리는 정확한 규정이 없다 보니 카눈이 왔던 어제도 쓰레기 수거에 나섰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위험해서 쓰레기를 치우지 않으면 득달같이 민원이 들어와 나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운전 담당 환경미화원인 김승호(55)씨가 11일 오후 10시께 서울 구로구의 한 주택가 앞에서 주차하고 있다(사진=황병서 기자)
환경미화원들이 쓰레기 수거 차량 뒤편에서 내렸다 올랐다를 반복하는 ‘발판’ 사용 여부가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발판이란 환경 미환원들이 수거차량 뒤에 매달려 갈 수 있게 만든 장치다. 도로교통법에서는 수거 차량에 발판을 달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법을 지키면서 동트기 전 쓰레기 수거를 마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김씨는 “최근 음주 운전자가 쓰레기 수거차량 뒤를 그대로 들이받아 한 환경미화원이 한쪽 다리를 잘라내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면서도 “시간 내 치우지 못하면 주민이 민원을 넣고, 구청에서는 회사를 압박하게 되고, 회사는 그게 누적되면 저희를 해고할 수 있는 사유가 되다보니 우리도 발판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이러한 사고 외에도 관절염 등을 달고 사는 문제도 여전하다고 했다. 쓰레기 수거 차량의 높낮이가 있다 보니 올랐다 내리기를 하다 보면 무릎이 망가지기 쉬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한국형 청소차’라고 쉽게 타고 내리도록 높이가 낮은 수거 차량이 2018년 도입됐다”면서도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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