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건설사도 모그룹에 SOS…폭탄된 부동산PF, 안전지대가 없다

[PF 올스톱에 건설사 유동성 위기]
건설사들 현금 확보 초비상
롯데건설, 모그룹에 유상 증자로 조달
포스코·삼성물산, 보유현금 긁어 모아
PF 우발채무 16조원, 4년새 17% 증가
중소건설사는 정부 지원 외 방법 없어
"부동산경기 침체에 내년이 더 걱정돼"
  • 등록 2022-10-25 오전 5:00:00

    수정 2022-10-26 오전 9:46:45

[이데일리 신수정 기자] 지난 2~3년 동안 부동산 시장 호황기 아파트 수주를 늘리면서 남발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 부메랑으로 돌아오면 위협하고 있다. 유동성을 확보하지 못한 건설사는 부도의 파도를 넘지 못하고 있다. 사업성이 낮은 지방과 중소·중견 건설사 사업장부터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PF 보증 여파로 40여 곳의 건설사가 ‘줄도산’했던 사태를 재현하는 게 아니냐는 위기감이 확산하고 있다. 대형 건설사도 자금 확보에 고민이 커지고 있다. ‘레고랜드발’ PF 상환 미지급 사태로 자금 경색이 건설업 전반에 확산하면서 회사채 발행이 더욱 어려워져서다. 건설업계에서는 내년 자금조달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가장 큰 화두다.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차환용 회사채 발행 막혀…대신 현금으로

24일 건설업계 등에 따르면 현재 채권시장에서 건설사 회사채에 대한 발행금리 산정을 하지 않아 대형건설사들이 자체적으로 조달하거나 보유한 현금으로 회사채 만기를 상환하고 있다.

롯데건설은 레고랜드 사태 직후에 회사채 발행을 알아보다 모 그룹의 유상증자와 계열사 금전대여 등으로 7000억원을 조달했다. 회사채 발행금리가 연 10%을 훌쩍 넘다 보니 금융 비용이 부담스러워 유상증자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포스코건설은 지난 22일 1100억원의 회사채 만기가 도래했지만 차환용 회사채를 발행하지 않고 자체 보유 현금으로 상환했다. SK에코플랜트도 이달 중 2000억원 수준의 회사채 만기가 예정돼 있는데 이 중 1500억원을 이미 상환했다. 이달 말 만기 도래하는 500억원의 회사채도 현금 상환할 예정이다.

삼성물산도 다음 달 500억원 수준의 회사채 만기가 도래하지만 회사채 대신 현금을 선택했다. 쌍용건설은 이달 말 기업어음(CP) 만기 200억원을 자체자금으로 상환, 다음 달 120억원 도래하는 만기 역시 현금 상환할 계획이다. 회사채 발행이 막혀 있어 현금으로 상환하다 보니 일부 건설사에 유동성 문제가 발생한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대형 건설사는 유동성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지만 지방 건설사와 중소형 건설사는 유동성 위기에 노출돼 있다. 이들은 정부의 채권안정펀드와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 조달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건설업계에서는 채안펀드를 신청하는 것만으로도 ‘유동성 문제 기업’으로 낙인찍힐 수 있어 오히려 채안펀드 신청을 꺼린다고 말한다.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올해보다 내년이 더 걱정이다. 내년 부동산 경기가 추가 금리 인상 등으로 계속 침체를 겪을 수밖에 없어 분양 자체가 어려울 전망이다. 회사채 시장의 불확실성이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건설사가 회사채 발행을 재개하더라도 발행금리는 현재보다 큰 폭으로 상승할 전망이다. 대형 건설사던 중소형 건설사던 자금조달계획을 미리 고민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내년엔 더 큰 유동성 위기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중견 건설사 한 관계자는 “올해와 내년 상반기까지 버틸 수 있는 여력이 있지만 내년 하반기까지 이러한 시장 상황이 이어진다면 있는 자산을 다 팔아서라도 현금을 확보해야 한다”며 “지금은 밀어내기 분양으로 현금을 확보하고 착공을 미뤄서라도 시장 안정기까지 버텨야 한다는 분위기가 업계에 팽배해있다”고 말했다.

[그래픽=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부동산PF 우발채무에 살얼음판 걷는 건설사

지금처럼 부동산 경기가 악화한 상황에선 부동산 PF가 건설사의 발목을 잡을 수밖에 없다. 한국신용평가의 최근 보고서에서 지난해 말 기준 건설사가 PF 보증을 해준 사업장의 58%는 미착공 사업장인 것으로 나타났다. 신용등급 AA급인 현대건설은 서울 가양동 CJ 부지사업 등 대부분 사업을 아직 착공하지 못했고 A급 롯데건설도 마찬가지다. 건설부동산시장이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는 상황임을 고려하면 앞으로 더 큰 리스크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 전체 건설사의 PF 우발채무총규모는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올 6월말 KR 유효 등급을 보유한 17개 건설사의 PF 우발채무 총 규모는 15조8000억원으로 2018년 말(13조5000억원)보다 17% 증가했다. 연대보증과 자금보충을 합한 것으로 채무 인수는 포함하지 않은 금액이다. 우발채무는 현재 빚은 아니지만 앞으로 특정 요건을 충족하면 채무로 확정할 가능성이 있는 자산을 의미한다.

재건축 공사를 다시 시작한 둔촌주공 아파트에서 한 건설관계자가 현장을 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더구나 최근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사업 프로젝트 자체가 멈춰서는 경우도 많아져 우려를 키우고 있다. 미착공 사업장은 수익성이 담보되지 않아 사업 진행이 멈춘 곳이기 때문에 추후 악성 채무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 만약 고금리 브릿지론을 받은 시행사가 금리 부담에 착공을 결정하고 후에 미분양 문제가 생겨 PF 대출을 갚지 못할 시 시공사가 공사비를 대물로 받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PF 사업을 진행하더라도 분양이 잘 안 되면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다분해 현재로서는 PF사업에 대한 투자가 지연되거나 감소할 수밖에 없다”며 “시장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하면 부동산 관련 사업이 전반적으로 위축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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