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등급 양극화…잘나가던 기업만 더 잘나갔다

[신용등급 K자 양극화]①
신용평가 3사 등급 상햐향배율 1.66배
작년 말 1.52배 대비 상승…A급 중심 변동
BB급 이하 줄줄이 하락…투기등급 하향 기조 지속
“경기침체에 등급 상향 추세 하반기 꺾일 전망”
  • 등록 2022-07-20 오전 4:00:00

    수정 2022-07-20 오전 4:00:00

[이데일리 박정수 기자] 올해도 신용등급 상향조정 기조는 유지됐다. 코로나19 엔데믹 전환으로 수요측면에서 코로나19의 부정적 영향을 크게 받았던 업종의 사업 환경이 개선되면서다. 특히 글로벌 유동성에 기반한 대규모 자본확충으로 신용도 상향이 이어졌다.

다만 상향조정은 주로 투자등급(AAA~BBB급)에서 이뤄졌고 재무역량이 떨어지는 투기등급(BB급 이하) 기업은 하향조정이 많아 양극화 현상은 심해졌다. 인플레이션 지속, 글로벌 경기둔화 우려, 금리인상 등으로 투기등급 재무상황은 더 악화한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신용도 상향기조 지속…A등급 중심 상승

19일 신용평가 3사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등급전망과 워치리스트를 포함한 장기등급 상하향배율(단순 평균)은 1.66배로 작년 말 1.52배에 비해 높아졌다. 2020년 0.47배까지 떨어졌던 상하향배율은 2021년 이후로는 상승 추세를 보이고 있다.

상하향배율이 1배를 넘었다는 것은 신용등급이 내려간 회사보다 올라간 회사가 더 많았다는 뜻이다. 신용평가 3사(중복 포함)에서 등급과 전망, 워치리스트가 상향된 곳은 126건, 하향된 곳은 77건이다.

상반기 신용등급만 보면 상향이 56건, 하향이 41건으로 1.35배 수준이나 전망과 워치리스트 상향이 70건, 하향이 36건으로 상향이 2배 가까이 많아지면서 전체 상하향배율도 높아졌다.

조도형 신한BNP파리바 크레딧리서치 팀장은 “상하향배율 상향 기조가 유지된다는 것은 이익 완충력을 통해 재무구조가 개선되고 있다는 뜻”이라며 “올해 상반기까지는 크레딧 펀더멘탈이 안정적 혹은 개선되는 상태였다”고 해석했다.

[그래픽=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주로 A등급 중심으로 등급이 상향됐다. 상반기 장기등급 상향을 보면 한국기업평가는 23건 가운데 16건이 A등급 상향이었고, 전망과 워치리스트 상향도 16건 가운데 9건이 A등급이다. 한국신용평가도 장기등급 상향에서 11건 가운데 8건이 NICE신용평가도 22건 가운데 15건이 A등급이다.

김은기 삼성증권 연구원은 “작년 대기업 계열사의 우량 기업 기업공개(IPO)와 유상증자 등의 이벤트로 인해 A등급에서 상향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2021년 3월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됐으며 이 과정에서 신주와 구주매출을 통해 약 1조5000억원의 자금이 유입됐다. 이로 인해 SK바이오사이언스와 모회사 SK케미칼의 재무구조가 대폭 개선됐으며, 지주회사인 SK디스커버리의 신용도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2021년 상반기 ‘긍정적’ 전망이 부여된 이후 올해 상반기 SK바이오사이언스(A-→A), SK디스커버리(A→A+), SK케미칼(A→A+) 3개사의 신용등급이 상승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A+→AA-)의 경우 2022년 4월 3조2000억원의 유상증자를 통해 향후 사업역량 강화를 위한 삼성파이오에피스 지분 매입과 대규모 증설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선제적으로 확보한 점이 등급 상승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또 정부의 완화적 통화정책으로 시중에 유동성이 확대된 가운데 코로나19 봉쇄 완화 등에 따라 경기 회복세를 보이면서 대부분 금융업종의 실적이 개선됐고, 일부는 유상증자로 추가적인 자본 확충도 이뤄지면서 등급이 상향됐다. 이에 IBK투자증권(A+→AA-), 유안타증권(A+→AA-), 한화투자증권(A+→AA-) 등이 AA급으로 올라서기도 했다.

K자형 등급변동 지속

신용등급 상승 기조에서도 투기등급의 하향 기조는 지속됐다. 전방산업에 따른 실적 가변성이 크고 원자재 가격과 운송비 부담 등에 대한 대응 능력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신평 3사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등급전망과 워치리스트를 포함한 투자등급의 장기등급 상하향배율은 2.72배인 반면 투기등급은 0.31배에 불과하다. 작년 말 0.2배 대비 상승했으나 미미한 수준이다.

같은 기간 한국기업평가의 경우 투기등급 상하향배율이 0.07배에서 0배로 하락, 투기등급 상향이 1건도 없었다. 한국신용평가의 경우 0.15배에서 0.4배로 NICE신용평가는 0.39배에서 0.53배로 각각 소폭 증가했다.

상반기 장기등급 하향을 보면 BB급이 주를 이뤘다. 한국신용평가의 경우 등급 하향 13건 가운데 8건이 BB급 이하다. NICE신용평가도 15건 가운데 8건이 한국기업평가는 14건 가운데 4건이 투기등급이다.

조도형 팀장은 “경기 진폭이 위쪽이든 아래쪽이든 커질수록 대기업과 소기업 간의 격차는 벌어진다”며 “AA와 A급 구간과 BB급 구간의 갭은 커지기 마련”이라고 강조했다.

일례로 의류업(OEM, 패션)의 경우 코로나19 영향을 크게 받은 업종 중 하나지만, 선도업체와 하위권 업체 간에 미치는 영향의 강도는 다르게 나타났다.

코로나19로 인한 골프 붐으로 골프웨어 호황이 일었으나 패션그룹형지의 경우 ‘BB’에서 ‘B+’로 하향 조정됐다. 등급 전망도 기존 ‘부정적’을 유지했다. 여성복 브랜드력이 예전만큼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골프웨어 브랜드인 까스텔바작마저 경쟁 심화로 적자가 발생하면서 수익성이 크게 저하됐다는 판단에서다.

신환종 NH투자증권 FICC 리서치센터장은 “최근 인플레이션 지속과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고 있으나 대기업들은 버틸 힘이 있다”며 “투자등급은 견조한 반면 투기등급은 재무적 훼손으로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적 우려에 신용도 상승 속도 둔화

하반기는 상반기와 같은 등급 상향 속도를 보이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한다. 높은 수준의 원자재 가격과 물류 등의 공급망 리스크가 발목을 잡는 가운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인플레이션 등에 따른 글로벌 경기 둔화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신환종 센터장은 “다가올 경기 침체에 대한 영향이 아직 재무제표에 반영된 상태는 아니다”며 “하반기에는 이러한 영향들이 반영되면서 등급 상향 추세는 꺾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더구나 경기부양을 위해 공급한 유동성을 회수하는 정부의 통화 정책과 고물가에 대응하기 위한 가파른 금리 인상, 부동산 경기와 증시, 소비심리 저하 등 전반적인 사업과 금융 환경에는 부정적인 요소가 더 많은 상황이다.

김은기 연구원은 “신용평가사들의 등급 조정은 과거 실적을 토대로 나온 현재의 재무제표를 중심으로 이뤄진다”며 “코로나19 이후 실적이 좋아진 기업들의 등급 조정은 이뤄졌기 때문에 상반기가 등급 상승의 정점이다. 하반기는 신용도 상향 조정의 동력이 약화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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