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상 서울대 특임교수·고려대 16대 총장]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넷플릭스를 시청하는 전 세계 83개국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오징어 게임’은 삶에 실패해 희망을 잃은 사람들에게 일확천금의 기회를 주는 극단적 경쟁게임이다. 딱지치기나 구슬치기 같은 단순게임을 9번이나 시켜 탈락하는 사람들을 무참하게 처형하고 최후의 승자에게 456억원의 상금을 준다. 상금은 처형된 사람들의 생명에 대한 대가다. 인생의 나락에 빠진 사람들에게 돈을 얻으려면 생명을 걸라는 선택을 요구하고 승자 1인을 남겨놓고 모든 참가자들을 죽이는 잔혹한 게임이다.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 사태가 각국을 경제생명을 유지하는 승자와 죽음을 당하는 패자로 나누면서 오징어 게임과 유사한 결과를 낳고 있다.
2019년 말 중국에서 시작한 코로나19 사태가 전 세계로 확산하자 각국은 경제타격을 막기 위해 무제한적으로 돈 풀기에 나섰다. 나라마다 기준금리를 낮춰 통화 공급을 극대화하는 것은 물론 예산을 늘려 재정지출을 확대하는 팽창정책을 경쟁적으로 펴 코로나로 인한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주력했다. 이러한 위기 극복정책이 최악의 경제상황을 막는 외형적 효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지만, 내면적으로는 물가불안과 경기침체가 점차 경제의 숨을 막는 스태그플레이션을 낳고 있다. 유동성이 과도한 상태에서 코로나 확산에 따라 글로벌 공급 망이 불안해지자 물가불안과 경기침체가 서로 꼬리를 무는 악순환이 나타났다. 설상가상으로 원자재 공급 차질과 가격상승이 이 악순환에 불을 지르고 있다.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해 국제 원유가격이 연초 대비 60%이상 올라 배럴당 77달러가 넘는다. 천연가스 가격은 120%이상 올라 100만 BTU 당 6달러에 육박한다. 원자재 가격 상승이 스태그플레이션의 가속 페달을 밟으며 각국 경제를 압박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서바이벌 게임의 주요종목으로 등장해 스태그플레이션의 덫을 만들었다. 스태그플레이션의 덫에 걸리는지 아닌지 여부에 따라 각국 경제가 승자와 패자로 나뉜다. 백신을 조기에 개발하고 접종을 서둘러 경제피해를 줄이고 스태그플레이션의 덫을 피한 나라는 승자의 대열에 서고 그렇지 못한 나라는 패자대열에 서야 한다. 더욱이 코로나 시대에 맞춰 미래 산업을 선도적으로 발전시킨 나라는 코로나 수혜국으로 앞서 나가며 코로나 타격으로 고통을 받는 다른 나라들을 따돌리고 있다.
미국이 코로나19의 유력한 승자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6%가 넘는다. 고속성장을 주도하던 중국의 경제성장률보다 높을 가능성이 있다. 이에 따라 실업률이 자연실업률인 5%대로 떨어져 사실상 완전고용상태다. 문제는 물가불안이다. 기준금리를 0%대로 낮추고 무제한적인 양적완화 정책을 펴 물가상승률이 5%를 넘어 심각한 상황이다. 자연스럽게 나온 정책이 금융정상화 정책이다. 미국은 금년 말부터 테이퍼링 정책을 펴 양적완화를 축소하고 내년부터 기준금리를 올릴 예정이다. 어쩔 수 없이 다른 나라들도 미국을 따라야 한다.
우리나라는 코로나19 대응에서 비교적 선방해 경제적으로 패자의 대열에 서는 것은 피했다. 대내적으로 자영업 등 서민경제의 피해가 크다. 그러나 대외적으로 수출경쟁력이 높아 올해 4% 정도의 성장률을 기록할 전망이다. 문제는 후속 게임인 금융시장 불안의 대처다. 가계부채가 1800조원을 넘어 가구당 8800만원에 이른다.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한계기업이 15%에 이른다. 여기에 부동산시장과 증권시장이 거품에 들떠 언제 꺼질지 모른다. 이런 상태에서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금융위원회는 대출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자칫하면 스스로 금융위기를 촉발해 경제 불안을 가중할 수 있다. 자영업 회생, 가계부채 해소, 기업투자 활성화 등의 대책을 마련한 후 필요한 정책을 펴야 한다. 무엇보다 과학기술과 산업혁신의 새로운 청사진이 필요하다. 한국판 뉴딜, K-반도체, K-바이오 등의 정책이 있으나 실질적인 내용이 없다. 더구나 내년 대선을 앞두고 과학기술 발전에 대한 후보자들의 공약이 눈에 띄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승자독식의 서바이벌 게임에서 탈락자가 되는 일은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