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헌법에 규정돼 있는데도 절망적일 정도로 관심을 받지 못했던 분야도 있습니다. 헌법 32조에 규정된 ‘최저임금제’와 ‘근로조건의 기준’ 등이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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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32조 1항은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적, 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동법 3항은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합니다. 이 헌법 조항에 근거해 규정한 법이 바로 근로기준법입니다. 1970년 11월 13일 약관을 겨우 넘긴 청년 노동자 1명은 이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하며 분신했습니다.
50년이 지난 지금, 근로기준법 위반을 호소해도 바뀌지 않는 현실에 노동자들의 분신이 문화처럼 자리 잡던 가망 없던 시대는 어느 정도 지난 듯합니다.
올해 장시간 노동에 따른 폐해는 택배 노동에서 극단적으로 불거졌습니다. 코로나 대유행으로 비대면 소비가 크게 늘면서 택배 물량이 늘어났고, 이는 과로에 시달리던 택배 기사들이 잇따라 과로사하는 참사로 이어졌습니다.
여전한 장시간, 저임금 노동
사람이 죽어나갈 때가 되어서야 정부와 기업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끔찍하게도 택배 노동자들의 죽음이 아니었다면 이들은 여전히 장시간 노동에 무관심했을지도 모릅니다. 애초에 정부와 택배사들은 택배기사들의 노동자성을 인정조차 하지 않아 왔기 때문입니다.
뒤늦게 고용노동부가 마련한 과로방지 대책에는 택배기사들의 하루 작업시간 한도를 정하고 ‘주 5일제’를 유도한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택배 노동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진작에 종사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했다면 특별할 것도 없이 기업이 미리 나서 지켜야 할 내용입니다.
한 달 택배 총 물량이 3억개에 달해 운송산업이 한국 경제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현재 상황을 감안하면 노동시장을 관리하는 정부의 인식이 얼마나 안일한지가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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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무작정 비난할 수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 덕에 기업이든, 종사자든, 돈을 많이 벌 수 있으면 좋은 것 아니냐는 논리도 어느 면에서는 타당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회 구성원들의 안녕을 심각하게 저해하고 있다면 얘기가 다릅니다. 근로기준의 조건이 굳이 헌법에 포함된 이유도 거기서 찾아야 합니다. 5100만명의 대한민국 국민 가운데 경제활동을 하는 인구가 2500만명, 그 가운데 근로기준법 적용의 대상이 되는 임금근로자가 2000만명인 현실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