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아베가 '전쟁 가능한 나라' 일본을 꿈꾸는 이유

일본 역대 최연소 총리에 이어 최장수 총리 예약
전쟁 가능한 나라는 A급 전범 외할아버지 염원
"일본이 패전이라는 역사로 기억되길 원치 않아"
  • 등록 2019-07-23 오전 12:47:34

    수정 2019-07-23 오전 7:38:00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겸 자민당 총재가 22일 오후 자민당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날 치러진 참의원선거 결과 등에 대한 당의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AFP
[이데일리 신정은 기자] “헌법 개정은 내 평생의 과업입니다. 국민투표법은 만들었지만 개헌까지는 이루지 못했습니다. 내가 무엇을 위해 정치가가 됐는지 생각하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개헌)하고 싶습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지난 2013년 NHK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처럼 밝혔다. 평화헌법을 바꿔 ‘전쟁 가능한 일본’을 만들겠다는 아베 총리의 의지는 단지 구호나 공약이 아니다. 평생 과업이자 정치인이 된 목적인 것이다.

아베 총리는 오랜 시간 개헌의 ‘꿈’을 이루기 위해 준비해왔다. 특히 21일 치러진 참의원 선거 유세 기간에는 시종일관 개헌 의지를 밝히며 공약으로 이를 전면에 부각했다.

아베 총리가 이끄는 집권 연립여당은 이번 참의원 선거 대상인 124석 가운데 자민당이 57석, 공명당이 15석을 각각 확보해 총 72석을 얻었다. 당초 목표였던 과반수 확보를 무난히 넘긴 것이다. 하지만 개표 상황을 보는 아베 총리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개헌 발의에 필요한 의석 수를 얻는데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 발의는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모두 3분의 2(164석) 이상의 지지를 얻어야 가능한데, 기존 여당 의석과 개헌에 긍정적인 일본유신회를 더해도 4석이 부족했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임기 중 현재 개헌에 반대하는 야당의원들을 설득해서라도 개헌을 발의하겠다고 의지를 드러냈다.

전범인 외할아버지 영향…개헌안 드라이브

아베 총리는 일본 최고의 정치명문가 출신이다. 친할아버지인 아베 히로시는 군국주의를 강하게 비판해온 강골 정치인이었고, 아버지인 아베 신타로도 평화헌법을 옹호했다.

그런 친할아버지와 아버지와 다르게 아베 총리는 과거사를 부정하는 ‘역사 수정주의자’로 불린다. 그의 사상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은 아버지가 아닌 외할아버지인 탓이다.

아베 총리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인 외할아버지는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다. 아베 총리는 어린 시절 바빴던 부모 대신 외할아버지인 기시 전 총리 손에 자랐다.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의 평화헌법 개정은 기시 전 총리의 염원이기도 했다.

외할아버지의 청춘 시절 일본을 ‘영광의 시절’이었다고 평가했던 아베 총리. 그는 평화헌법에 일본 자위대의 존재를 명기하는 개헌안을 내놓으며 드라이브를 걸어왔다. 평화헌법은 2차 세계대전 후 승전국에 의해 만들어졌고, 패전국인 일본의 평화헌법 9조에는 국가간의 분쟁 해결수단으로 전쟁과 무력행사를 영구히 포기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아베 총리는 일본의 제국주의가 패전이라는 역사로 기억되길 원치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2014년 “일본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타국에 대한 무력공격으로 국민의 권리가 위태로워지는 명백한 위험이 있는 경우 최소한의 실력행사는 자위 조치로써 헌법상 허용된다”며 해석을 바꿨다. 이어 2015년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규정한 안보법제를 도입했다.

남은 큰 산은 개헌 국민투표다. 아베 총리는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개헌선을 확보하지 못했지만, 향후 개헌에 필요한 의석수 확보를 위해 무소속 의원을 설득하는 등 개헌 국민투표 발의를 위한 작업을 본격화할 전망이다.

최장기 총리 눈앞…4연임론도 부상

개헌 뿐 아니라 일본 내에 당면한 숙제도 많다. 당장 10월 예정된 소비세율 인상(8%→10%)이 눈앞에 있다. 또 도널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5월 방일 당시 ‘선거 후까지 기다리겠다’고 예고한 미·일 무역협상도 남아 있다.

개헌 국민투표 발의를 하더라도 국민들이 그의 손을 들어줄지 미지수다. 아베 총리의 여론전에도 불구하고 개헌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여전히 낮아서다. 요미우리신문이 지난 4∼5일 유권자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이번 선거의 이슈 중 ‘개헌’은 응답자의 7%만의 선택을 받았다. 12~14일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헌법에 자위대 존재를 명기하는 개헌안에 34%만 찬성했다.

아베 총리에겐 여론을 조성할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그래서인지 이번 참의원 선거가 끝나기 무섭게 자민당 내부에서는 아베 총리의 연임론이 다시 부상했다.

자민당의 2인자인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은 한 민영 라디오방송의 개표 방송에 출연해 “이번 선거에서 (아베 총리의) 4선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할 수준의 지원(지지)을 얻었다”고 말했다.

니카이 간사장은 지난 3월에도 아베 총리의 4연임론을 제기했으나 아베 총리는 가능성을 부정한 바 있다. 그러나 불가능한 전망은 아니다. 아베 총리의 올해 나이는 만 64세다. 한번 더 임기를지내도 60대다.

일본은 집권 여당 총재가 총리다. 여당인 자민당 총재의 임기는 당초 ‘2연임 6년’이었지만 2017년 ‘3연임 9년’으로 수정됐다. 아베 총리는 바뀐 규정으로 작년 3연임에 성공해 임기가 2021년 9월까지다.

예정대로 임기를 마치기만 해도 아베 총리는 일본 역대 최연소 총리에 이어 최장수 총리란 타이틀까지 거머쥐게 된다. 아베 총리가 자위대의 존재와 역할을 명기는 개헌까지 성공한다면 일본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인물이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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