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나라를 빼앗겼던 까닭도 공동체 의식이 파괴됐기 때문이었다. 민생은 외면하고 사리사욕을 위해 ‘위장된 명분’으로 아귀다툼을 하는 것이 지도층의 일상이었다. 가렴주구에 시달린 백성은 초근목피로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운데, 왕권을 확립한답시고 궁궐만 높이 세우려 하니 공동체의식이 풍비박산 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먹물 먹은 자’들이 저만 살려고 앞 다투어 외세에 빌붙는 비극적 상황이 전개됐던 것은 모두 동기양립 시스템이 파괴됐기 때문이었다.
아슬아슬했던 순간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인지 모르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돈이나 권력을 거머쥘수록 공연히 우쭐대거나 힘없는 이들한테 더욱 야박한 행태를 보이기 쉽다. 낙하산을 타고 공짜로 감투를 쓴 인사들은 정당성을 위장하기 위해 조직을 장악하려 기를 쓰다가 조직을 망쳐버린다. 파벌을 부추기며 가짜 ‘의리’를 부르짖던 그들은 기회주의 습성에 따라 상황이 바뀔 조짐만 보여도 뒤돌아선다.
공직자 숫자가 많아질수록 동기양립 체제가 불분명해지며 나라살림은 어려워질 가능성이 커진다. 생각해보자. 재정적자가 바로 코앞의 걱정으로 와 있는 판국에, 공무원연금 충당부채가 물경 800조원을 훨씬 넘어가는데도, 17만 명이 넘는 공무원 증원을 걱정하는 관료는 없다고 한다. 그들은 어이하여 AI가 일을 신속하게 처리하는 세상으로 바뀌고 있음을 생각하지 못하는가? 입바른 말을 않으면 개인의 미래는 몰라도 나라의 미래를 보장하기 어렵다.
문제는 그들이 사회를 위해 일하지 않고 세월을 바꿔가며 눈치만 보더라도, 납세자들이 평생 먹여 살려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 뿌리 깊은 사회병리현상은 공동체의식을 말살시켜 성장과 발전의 원동력인 동기양립의 틀을 허물어트리고 있다. 한국경제가 굴곡을 벗어나서 선진 사회로 진입하기 위한 필요조건은 불필요한 자리를 극소화하고 사회보상체계를 정립하여 불로소득을 최소화시키는 일이다. 사회안전망이 확충되어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어야 공동체의식 회복이 보다 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