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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인증 기준 없다” 휠체어 그네 철거
지난해 9월 세종특별자치시 고운동에 자리한 공립 특수학교인 ‘세종 누리학교’ 놀이터에 소프라노 조수미씨가 나타났다. 조씨는 오페라 공연이 아닌 휠체어 그네를 기증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2012년 호주의 한 특수학교에서 휠체어 그네를 접한 조씨는 2014년부터 사비를 털어 장애아동시설에 휠체어 그네를 기증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이충재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과 최교진 세종시교육감, 고준일 세종시의회장 등이 참석해 ‘장벽 없는 도시’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올해 3월 조씨가 기증한 휠체어 그네는 놀이터에서 자취를 감췄다. 같은 달 국민안전처 위탁을 받아 휠체어 그네가 설치된 창원 천광학교 놀이터 안전검사를 진행한 한국장애인이워크협회가 휠체어 그네는 놀이기구 안전인증 대상이 아니어서 인증을 내줄 수 없다고 학교 측에 통보한 때문이다.
‘불법’ 놀이기구 설치로 학교측이 과태료를 낼 처지에 몰리자 놀이기구 제작업체 보아스코리아는 놀이터에서 휠체어 그네를 철수했다. 보아스코리아는 조씨의 의뢰를 받아 휠체어 그네를 제작해 설치한 회사다.
이후 휠체어 그네는 조씨가 기증한 세종 누리학교와 창원 풀잎마을을 비롯해 보아스코리아가 지방자치단체 등의 의뢰를 받아 제작해 납품한 진주 혜광학교, 경기 광주 한사랑학교 등에서도 줄줄이 쫓겨났다.
놀이터 밖에 휠체어 그네 설치 고육책
국가기술표준원(기표원)은 보아스코리아가 휠체어 그네 안정 인증을 신청하자 “어린이제품 안전특별법에 장애 아동용 놀이기구 시설에 대한 안전인증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다”며 “기존 어린이 놀이시설 안전 기준은 장애인용 놀이기구에는 적용할 수 없다”고 회신했다.
보아스코리아는 기표원에 부칙으로라도 장애인용 놀이기구에 대한 안전인증기준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기표원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보아스코리아는 국민안전처에 놀이터 밖에라도 휠체어 그네를 설치할 수 있는 지 질의했다. 현행법상 놀이터 밖에 놀이기구는 안전인증 심사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맹점을 활용한 고육책이었다.
이에 안전처는 ‘놀이터 밖에서는 인증없이 설치해도 과태료 부과대상이 아니다. 다만 충돌방지를 위해 울타리 등으로 충분한 안전조치를 취해달라’ 답했다. 보아스코리아는 놀이터 외곽에 울타리를 새로 만든 뒤 재설치 작업을 진행 중이다.
장애아동 놀이터 이용에 차별 없도록 법 개정해야
김종규 보아스코리아 대표는 “아파트 단지에서 장애인 전용 놀이기구 설치를 문의해 와도 인증 문제가 해결이 안 됐다고 하면 설치를 꺼린다”며 “이런 상황에서 장애인을 위한 놀이기구 개발과 연구가 힘든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남진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시민연대 실장은 “놀이터는 보험에 가입돼 있지만 휠체어 그네는 놀이터 바깥에 있어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다”며 “심지어 휠체어 그네를 설치한 기관에서 장애인 보호자들에게 사고가 일어날 경우 책임지지 않는다는 각서를 받기도 한다”고 전했다.
기표원은 장애인용 놀이기구는 장애인복지법을 관할하는 복지부에서 관리해야 할 문제인 만큼 안전인증기준 또한 보건복지부와 협의가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표원 관계자는 “장애인 복지법을 복지부에서 담당하는 상황에서 기표원이 임의대로 장애인 위한 놀이기구 안전 인증기준을 성급하게 정할 경우 또 다른 부작용을 부를 수 있어 인증기준 제정에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장애인이 놀이터 밖으로 밀려난다면 그것도 하나의 차별”이라며 “비장애인의 안전에만 초점이 맞춰진 ‘어린이제품 안전특별법’과 장애아동용 놀이기구에 대한 검사 기준조차 마련돼 있지 않은 ‘어린이놀이시설안전관리법’ 등을 개선해 모든 어린이가 놀이터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