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개성공단은 끝났다

  • 등록 2016-02-15 오전 5:00:00

    수정 2016-02-15 오전 5:00:00

[이데일리 김정민 기자] 개성공단은 끝났다. 2004년 12월 15일 공장 가동을 시작해 4072일 만인 2016년 2월11일 문을 닫았다.

정부의 개성공단 가동중단은 ‘고육지책’(苦肉之策)이다. 내 살을 내주고 적의 뼈를 깎는 전략이다. 적벽대전 당시 거짓으로 항복해 불타는 배를 몰고 조조의 선단에 뛰어든 장수 황개의 고사가 유래다. 정부는 김정은의 돈줄을 끊기 위해 124개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밥줄을 끊었다.

개성공단 폐쇄는 ‘궁여지책’(窮餘之策)이다. 개성공단 폐쇄는 정부가 잇따른 북한의 도발에 꺼내든 마지막 카드다. 북한에 대한 경제적 포위망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중국, 러시아 등 북한에 우호적인 국가들의 제재 동참이 절실하다. 북한경제는 폐쇄적인 내수중심의 경제여서 포위망에 작은 구멍만 있어도 결정적인 타격을 주기 어렵다.

북한의 ‘깡패짓’을 못마땅해 하면서도 제재에는 미온적인 모습을 보여온 중국의 동참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우리는 이 정도 출혈도 감수했다’는 각오를 보여줘야 했다.

그러나 출혈에 비해 성과는 영 별로다. 정부는 개성공단 폐쇄로 핵개발 등에 들어가는 주요 자금줄 중 하나를 차단했다고 자평하지만 글쎄다. 게다가 중국은 여전히 강 건너 불구경이다.

북한에는 10여년간 개성공단에서 일하며 숙련공으로 성장한 근로자 5만 여명과 몰수한 시설 및 원자재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남측의 단전단수 조치 탓에 당장 공장을 돌리기는 어렵겠지만 전기를 연결하고, 공업용수를 공급하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판로가 문제지만 이 또한 어려울 게 없다. 개성공단에서 생산해온 제품은 의류, 신발, 주방기구 등 대부분 생필품이다. 생산한 제품은 내수로 돌리면 된다. 북한 근로자들이 개성공단에서 자체 생산한 아웃도어를 입고 개성공단 현장을 시찰하는 김정은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여곡절 끝에 남·북간 긴장관계가 완화되고 화해무드가 조성되면 개성공단이 다시 문을 열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의 개성공단은 지금의 개성공단과는 확연히 다른 곳이 될 것이다.

남북한 정부로부터 각각 한 번씩 호되게 뒤통수를 맞은 남측 기업인들이 다시 개성공단에 입주할 지부터가 의문이다.

아무리 저임금 경쟁력이 있다지만 언제 자산을 모두 몰수당한 채 내몰리듯 쫓겨날지 모르는 곳에서 사업을 벌일 배짱 있는(혹은 무책임한) 기업인이 얼마나 될까? 북한 또한 마찬가지다. 5만명이 넘는 근로자들이 단번에 실업자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부담을 짊어지면서까지 개성공단을 계속 운영하려 할까?

10년 전쯤 현대아산에서 대북사업을 맡고 있던 모 인사와 저녁자리를 한 적이 있다. 그는 그때 이렇게 말했다.

“개성공단은요. 양국 정부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남측은 100개가 넘는 기업과 직원들 밥줄이 걸려있고, 북한 입장에선 수십만 개성시민들이 공단 덕에 먹고 삽니다. 전쟁이 나지 않는 한 개성공단이 문 닫는 일은 없을 겁니다.”

순진한 생각이었다. 북한은 수십만 개성시민들의 생계보다 통치자의 자존심이 우선이었고, 우리정부는 124개 기업의 존폐보다 국제사회에서의 명분이 더 중요했다.

2013년 8월 남북 양측은 개성공단 재가동에 합의하면서 ‘남과 북은 어떤 경우에도 정세의 영향 없이 개성공단의 안정적 운영을 보장한다’는 합의문을 작성했지만 3년도 안돼 휴지조각이 됐다. 개성공단은 끝났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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