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기자의 천일藥화]경차보다 비싼 희귀의약품

  • 등록 2015-08-30 오전 6:08:33

    수정 2015-08-30 오전 6:08:33

[이데일리 천승현 기자] 제약사나 바이오업체들이 발표하는 해외 신약 성과 중 ‘희귀의약품 지정’이라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주로 미국 식품의약품국(FDA), 유럽 의약품감독국(EMA)로부터 지정돼 허가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뉴스다.

희귀의약품은 말 그대로 ‘드물어서 매우 귀한 약’을 뜻한다. 기존에 치료제가 없다는 이유로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되면 허가절차가 간소화된다.

희귀의약품은 허가받을 때 ‘제조·품질관리를 위한 기준 및 시험방법 자료’와 같은 복잡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 안전성·효능을 입증하기 위한 임상시험도 다른 제품보다 수월하게 진행토록 하는 등 희귀의약품 개발 업체에 상당한 혜택이 주어진다.

희귀의약품으로 지정하는 기준은 환자 수와 시장 규모다.

국내 환자 수가 2만명 이하인 경우에만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될 수 있다. 적절한 치료 방법과 의약품이 개발되지 않은 질환에 사용하거나, 기존 대체의약품보다 현저히 안전성 또는 유효성을 개선했다는 점도 입증돼야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받을 수 있다.

기존에 치료제가 있더라도 동일 치료제의 연간 수입실적이 150만달러 이하이거나 국내 생산실적이 연간 15억원 이하인 의약품도 희귀의약품으로 선정된다.

지금까지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된 제품은 206개 뿐이다. 전체 의약품 약 4만개 중 1%에도 못 미친다. 동종 배아줄기세포유래 망막색소상피세포 를 비롯해 7개 제품은 개발 단계에서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된 상태다.

희귀의약품도 다른 신약처럼 개발이 까다롭다. 하지만 대상 환자가 많지 않아 비싼 가격으로 책정된다. 보험약가 등재 의약품 중 가장 비싼 제품은 모두 희귀의약품이 포진됐다.

국내에서 보험약가를 받은 의약품 중 가장 비싼 제품은 국내 바이오업체 안트로젠이 개발한 ‘큐피스템’으로 1회 투여 비용에 대한 보험약가가 무려 1349만원이다.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된 큐피스템은 웬만한 경차 가격보다 비싼 수준이다. 환자들은 희귀의약품 약값의 10%만 내면 되지만 여전히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큐피스템은 국내업체가 개발한 3번째 줄기세포치료제로 크론병 누공 치료제로 사용된다. 크론성 누공은 희귀질환인 크론병 환자에서 나타나는 합병증으로 직장에서 항문주변 피부까지 염증이 관통돼 생긴 구멍을 말한다.

두 번째로 비싼 제품은 폐동맥고혈압 치료에 사용되는 ‘레모둘린주사5mg/㎖’으로 소주 한잔에도 못 미치는 20㎖ 한 병의 보험약가가 1120만원이다. 림프종과 다발성골수종 환자의 치료에 사용되는 ‘모조빌’은 한병에 699만8000원이다.

녹십자 헌터증후군치료제 ‘헌터라제’
야간혈색소뇨증이라는 희귀질환을 치료하는 ‘솔리리스주’는 736만629원의 가격으로 등재됐는데 이 제품은 환자 1인당 연간 약품비가 약 5억원에 달하는 고가라는 이유로 국내 등재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일었다.

녹십자(006280)가 자체 개발한 세계 두 번째 헌터증후군치료제 ‘헌터라제’는 3㎖ 한병의 가격이 228만원에 달한다. 선천성 대사 이상 질환인 헌터증후군은 골격이상, 지능 저하 등 예측하기 힘든 각종 증상을 보이다가 심할 경우 15세 전후에 조기 사망하는 유전병이다. 국내에는 70여명의 환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약사 입장에서 희귀의약품은 가격이 비싸고 경쟁 제품이 드물기 때문에 환자 수가 많지 않아도 높은 매출을 ‘효자 노릇’을 하기도 한다. 헌터라제는 지난해 국내에서만 매출 100억원을 넘어섰다. 솔리리스는 지난해 165억원어치 처방됐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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