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오늘, 2020년 12월 4일 대전고법 형사1부 이준명 부장판사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주거침입강간 등 혐의를 받는 오모(39) 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무죄 판단한 원심을 파기하고 유죄를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
그러나 오 씨가 본 글은 남성 이모(29) 씨가 거짓으로 꾸민 내용이었다. 이 씨는 오 씨에게 자신의 집 근처인 세종시 한 원룸 주소를 일러주며 ‘35세 여성’이 그곳에 사는 것처럼 속인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에서 “이런 범행은 처음”이라고 할 만큼 전례 없었던 이 사건이 사회적으로 큰 공분을 사게 된 건 1심 판결 때문이었다.
2020년 6월 5일 대전지법 형사 11부 김용찬 부장판사는 오 씨에게 죄를 물을 수 없다는 선고를 내렸다.
이 씨 속임수에 넘어가 일종의 ‘강간 도구’로만 이용됐을 뿐 실제 범죄를 저지를 뜻이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이 씨에게 받은 주소가 존재했고, 찾아간 집에 사람이 있었던 데다 거주자(피해자)가 지인인 줄 알고 문을 열어줬으며, 그 거주자가 여성이었다는 등 ‘이례적이고 우연한 사정들’이 결합해 발생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오 씨는 112에 신고하려는 피해자 전화를 뺏기도 했는데, 경제적 이용·처분하려는 게 아니라 단지 신고를 막으려는 차원이었다는 취지가 인정돼 절도 혐의까지 벗었다.
|
사건 이후 일상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충격을 받은 피해자는 1심에서 오 씨가 무죄를 선고받자 항변하기 위해 용기를 내 직접 법정에 나와 증언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검찰은 법리 검토를 거쳐 오 씨에게 강간 혐의를 따로 추가했다.
그로부터 6개월 뒤 항소심 재판부는 무죄 판단한 원심을 파기하고 오 씨에게 강간죄를 적용해 징역 5년을 선고했다. 80시간의 성폭행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10년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등 취업제한도 명령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강간 상황극’이라면 사전 협의가 있어야 하는데, 이번 사건에선 그런 게 전혀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주소를 알려줄 정도로 익명성을 포기하고 이번 상황극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강간 과정에 피해자 반응 등을 보고 이상함을 느꼈을 거라 보이는데도 상황극이라고만 믿었다는 피고인 주장을 납득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오 씨를 유도해 애먼 여성을 성폭행하게한 이 씨 역시 징역 9년이 확정됐다.
이 씨는 1심에서 오 씨를 도구로 이용해 피해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논리의 주거침입강간죄가 적용돼 징역 13년을 받았으나, 2심에선 미수죄만 인정돼 감형받았다.
이 씨는 재판 과정에서 ‘강간 상황극 피해자를 특정한 이유’를 묻자 “딱히 없다”고 답했다.
|
탐문 수사 중 피해자와 같은 원룸촌에 사는 한 여성은 여행 갔다 돌아와 보니 현관문에 “맨날 베란다에서 담배 피우던데”, “사진 몇 장 있는데 잘 볼게”라는 내용의 쪽지가 붙어 있었다고 했다. 피해자도 출입문에 이상한 쪽지가 붙어 있길래 안 보고 그냥 버린 적이 있다고 경찰에 말했다.
이 씨는 집 인근 주차 차량에서 다른 여성의 전화번호를 알게 된 뒤 20여 차례에 걸쳐 음란 메시지를 보낸 혐의(통신매체 이용 음란 등)로도 기소됐다.
형사들은 “원룸촌 내 건물 사이의 간격이 좁다 보니 옥상에 올라가면 누가 뭐 하는지 다 볼 수 있는 구조였는데, 이 씨는 틈만 나면 옥상에 올라가서 여성들을 지켜보면서 범행 대상을 물색했다”고 설명했다.
이 씨에 대해 “겉으로 보기엔 정말 평범했다. 직장도 멀쩡히 다니고 심지어 범행 당시 같이 사는 여자친구도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경찰청 1호 프로파일링 마스터(범죄행동분석관) 권일용 교수는 “현행법상 스토킹 범죄로 처벌이 가능하다. 이 법이 빨리 시행됐다면”이라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스토킹 처벌법’은 2021년 시행됐다. 그동안 경범죄로 분류돼 과태료 10만 원 처분에 그치던 스토킹 범죄를 제대로 처벌하기 위해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