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씨의 자녀가 다니는 이른바 ‘소수정예 학원’도 종전까진 킬러문항 중심으로 교재를 만들어 수험생들을 공부시켰다면 정부 방침 발표 이후에는 준킬러 문항을 중심으로 교재를 개편했다. 이씨는 “아직 구체적 출제 방향이 나오지 않았지만 이미 사교육은 정부 방침에 대응하고 있다”며 “이번 대책은 결과적으로 혼란만 야기할 뿐 사교육을 줄이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수능 발언에 이어 당정이 지난 19일 ‘킬러문항(초고난도 문항) 없는 수능’ 방침을 확정한 뒤 맞은 첫 일요일의 학원가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른바 ‘공정 수능’ 발표 이후 교육부가 지난 22일부터 학원의 허위·과장 광고 등에 대한 2주간의 집중신고기간을 운영하고 있어서다.
일부 학원은 긴장감 속에서도 킬러문항이 아닌 준킬러문항(준고난도 문항) 중심으로 학원 커리큘럼을 재조정하는 등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학생·학부모들은 사교육비를 줄여야 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수능을 5개월 앞두고 나온 대통령의 발언에는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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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학부모 “공감은 하지만...”
학부모들은 사교육비 부담이 워낙 큰 상황이라 대통령의 사교육비 경감 발언의 취지에 공감했다. 양천구에서 초6 아들을 키우는 김정연(45)씨는 “아직 아이가 초등학생인데도 한 달에 학원비로만 60만원 넘게 나간다”라며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원비 부담이 심해질 텐데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목동의 한 재수학원에 다니는 김영준(19)씨도 “재수를 하고 있는데 학원비가 부담스러워 대형 학원은 가지 못하고 있다”며 “사교육비 경감 방향에는 찬성한다”고 말했다.
다만 수능을 5개월 앞두고 나온 대통령의 발언으로 수능 준비에 혼란을 겪고 있다는 불만이 나온다. 고3 정모(18)양은 “킬러문항을 배제하면 상위권 변별력이 떨어질 것이란 예측이 많아 더 불안하다”며 “수능에서 킬러문항이 줄어들면 한번 해볼만 하다는 생각에서 학원에 다니지 않던 학생이 등록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학에 진학한 학생 중에서도 재수를 생각하는 학생이 늘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덧붙였다.
입시준비에 매진 중인 자녀 둔 학부모들은 특히 ‘발표 시점’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방향은 옳았지만 타이밍이 문제라는 식이다. 양천구에서 고3 딸을 키우고 있는 장모(52)씨는 “수능을 5개월 앞두고 나온 대통령 발언으로 아이가 힘들어한다”며 “왜 지금 시기인지 이해도 가지 않고 주변 엄마들 모두가 화가 났다. 내년 총선 때 두고 보자는 말도 나온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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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의 ‘킬러문항’ 배제 조치에 따라 학원가의 마케팅도 변화하고 있다. 일부 학생들이 벌써부터 새로운 유형의 수능 대비 학원을 찾고 있어서다. 대치동에서 만난 고3 수험생 장씨는 “어떤 학원에서 준킬러문항 중심의 커리큘럼을 만들었는지 학생들 사이에서 소문이 돌고 있다”며 “눈치 빠른 애들은 벌써부터 이런 학원을 찾아 등록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일부 소수정예 학원은 준킬러문항 위주로 커리큘럼을 개편하고 있다. 목동의 한 국어학원 원장 A씨는 “지금 국어교과서 10여종과 EBS 교재를 가지고 준킬러문항을 만들고 있다”며 “아무래도 지문은 한정적이지만 문제 자체를 비틀어 낼 가능성이 있기에 이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어 지문이 쉬워지면 문제는 어렵게 출제될 것이란 분석에서 대응전략을 바꿨다는 얘기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26일 사교육 경감 방안과 함께 공정한 수능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지난 23일에는 CBS라디오에 출연해 “지난 3년간의 수능과 이번 6월 모의평가 문항 중 킬러 문항으로 판단되는 것들을 26일 사교육 대책 발표 때 함께 공개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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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지난 22일부터 다음달 6일까지 교육 카르텔·부조리 집중신고기간을 운영하고 있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지난 22일 “카르텔·부조리 신고센터를 개설, 2주간 집중 신고기간을 운영하는 한편 사교육 부당광고에 대한 실시간 모니터링도 병행하겠다”며 “학원의 부당 광고 등이 확인·적발되면 예외 없이 엄정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 22일부터 24일까지 접수된 신고 건수는 총 40건으로 ‘사교육 업체와 수능출제체제 간 유착 의심’(6건), ‘끼워팔기식 교재 등 구매 강요’(4건) 등이 다수를 차지했다.
학원가는 홍보활동을 자제하는 등 일단 움츠리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목동의 한 학원 원장은 “킬러문항 대비와 관련해 세워놨던 홍보물을 전날(24일) 모두 폐기했다”며 “정부가 사교육 시장을 타깃 삼아 공격하는 상황이라 꼬투리 잡힐까 무섭다”고 했다. 한 대형학원 관계자도 “킬러문항 없는 수능과 관련해 설명회를 열까 고민했지만 결국 포기했다”며 “대형 입시설명회를 했다가는 역풍을 맞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들은 정부의 ‘사교육 시장 때리기’에 억울함도 드러냈다. 목동에서 논술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40대 김모씨는 “문제의 본질은 공교육이 부실해서 사교육으로 학생들이 밀려드는 것인데 모든 것을 사교육 탓으로 돌리고 있다”며 “연예인이 수백억씩 버는 것은 괜찮고 사교육 시장 최고 강사가 100억 이상 버는 것은 카르텔이고 부조리인가”라며 불만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