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의 신경영 비전] 제페토로 미리 보는 메타버스 세상

  • 등록 2021-12-11 오전 6:00:00

    수정 2021-12-11 오전 6:00:00

[이상훈 전 두산 사장·물리학 박사]제페토는 피노키오의 할아버지다. 그런데 요즘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제페토가 있다. 네이버에서 만든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최근 소프트뱅크와 미래에셋캐피탈 등 투자가들이 1조원이 넘는 기업가치 평가와 함께 2200억원을 투자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 2018년 출범하여 3년밖에 안된 회사가 메타버스로 유니콘이 되었다니 주목을 받을만하다.

제페토는 아바타로 가상의 세계에 들어가 친구도 사귀고 게임도 하고 여행도 즐기는 메타버스 공간이다. 그런데 그 정도는 메타버스를 표방하는 앱이라면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기능이다. 도대체 어떤 점이 특별했기에 소프트뱅크를 포함한 투자가들이 2200억원을 투자했을까. 그 이유는 이용자 기반에서 찾을 수 있다. 제페토는 전 세계에서 2억명이 사용하고 있고 일 이용자 수가 200만명에 이르고 있는데 90%가 중국, 인도네시아, 미국 등 외국인이고, 무엇보다도 이용자의 70%가 13세에서 24세 사이의 여성이다. 다른 대부분의 메타버스가 게임을 즐겨하는 남성 유저 중심인데 반해 대부분의 유저가 10대 여성들인 제페토가 투자가의 주목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제페토가 10대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독특한 아바타 만들기 기능 때문이다. 우선 자신의 사진을 스캔해서 입력하면 자기를 닮은 아바타가 만들어진다. 취향에 맞게 수정도 가능하다. 카메라에 얼굴을 대고 표정을 지으면 아바타가 그 표정을 따라 한다고 하니 가히 분신이라 할 수 있다. 아바타를 만들고 나면 다음은 옷과 가방, 액세서리, 화장, 헤어 등으로 아바타를 꾸미게 된다. 한창 외모에 관심이 많을 나이에 자기 분신인 아바타를 꾸미고 친구들과 비교하고 칭찬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할지 쉽게 상상이 간다. 현재 앱에 5000만개 이상의 아이템이 등록되어 있고, 아이템을 팔아 월 1500만원 이상 수입을 올리는 크리에이터도 있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구찌, 디올이 제페토에 매장을 열고 옷과 가방을 팔고 있다. 물론 진짜 옷과 가방이 아닌 아바타를 꾸미는 디지털 명품이다. 현실에서 몇 백만원씩 하는 가방을 3000원 정도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어 순식간에 매진이 되었다고 한다. 비록 아바타를 통해서지만 현실에서는 꿈도 못 꿀 구찌 가방을 들고 친구들 앞에 나타날 수 있었던 10대 소녀에게 제페토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 단지 인형놀이 같은 게임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현실에서의 친구 대부분을 만날 수 있고, 현실에서는 만날 수 없는 친구도 만날 수 있고, 현실의 자신을 꼭 닮은 아바타가 있고, 현실의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의 아바타가 있는 곳이 제페토이다. 현실의 확장이자 이상향이다. 이 세상을 뜻하는 ‘유니버스’에 뛰어 넘고, 추가하고, 완성한다는 의미의 접두사 ‘메타’를 붙인 신조어 ‘메타버스‘를 제대로 구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메타버스에서 자신을 닮았지만 더 예쁘고, 옷도 더 잘 입고, 인기도 많은 아바타로 대리만족을 얻다가 현실로 돌아오면 어떻게 될까. 깊은 실망감으로 자기혐오에 빠지지는 않을까. 2007년 스탠퍼드 대학 교수 제러미 베일렌슨은 아바타가 현실의 자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가상 현실에서 개인에게 주어진 아바타의 특성에 따라 현실에서의 행동이 달라진다고 한다. 예를 들어 키가 작은 사람이 키 큰 아바타를 받으면 현실에서도 키 큰 사람처럼 행동하고, 영웅 아바타를 받은 사람은 현실에서도 남을 돕는 등 정의로운 행동을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베일렌슨 교수는 이러한 현상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변신의 귀재 이름을 따 프로테우스 효과라고 불렀는데, 프로테우스 효과가 나타나는 이유는 사람들이 주변에서 자신에 대해 기대하는 행동을 하려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메타버스에서 얻은 자신감이 현실로 돌아온다고 무너지는 게 아니라 현실에서의 자신감으로 자리 잡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모든 기술이 그랬듯이 메타버스도 순기능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빈부격차나 차별, 거짓과 폭력이 싹틀 수 있다. 하지만 메타버스는 이제 태동 단계에 있는 신기술이다. 역기능을 최소화하고 현실 세계에 도움이 되는 메타버스로 발전해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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