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찬스 아닌데" 미국서 30대 임원이 흔한 이유[미국은 지금]

모든 빅테크 CEO들은 30대 임원이었다
선후배·동료 없고 동료만…나이 신경 안써
16년째 JP모건 이끄는 65세 다이먼 CEO
나이 많다고 눈치 보는 문화도 찾기 어렵다
직책 다양성 편견 없이 받아들이는 기업들
삼성 연공서열 파괴, 생존의 문제로 봐야
  • 등록 2021-12-05 오전 7:50:06

    수정 2022-09-07 오후 9:35:01

(그래픽=문승용 기자)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지난달 29일(현지시간) 갑자기 트위터 최고경영자(CEO)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한 잭 도시(45)는 1976년생이다. 그가 ‘세대교체’를 강조하며 CEO 바통을 넘긴 이는 퍼라그 아그라왈(37) 전 트위터 최고기술책임자(CTO)다. 아그라왈은 1984년생이다.

둘이 한국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도시가 창업자라는 특수성은 있지만, 그의 비슷한 연배 대부분은 고참 차장 혹은 막내 부장으로 살았을 것이다. ‘더 좋은 직장’으로 이직과 전직은 점점 멀어질 나이다. 아그라왈이라고 다르지 않다. 막내 차장이나 고참 과장으로 허리 역할을 했을 것이다. ‘변신’ ‘변화’와 조금씩 작별을 고할 나이다.

모든 빅테크 CEO는 30대 임원이었다

미국의 기업 문화를 한국식(式)으로 바라보면 모든 게 새롭다.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월가의 한 금융사에서 일하는 지인과 트위터의 CEO 교체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그는 “30대 CEO는 놀랍다”면서도 “핵심 임원 트랙을 밟으며 검증 받았을 테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다른 헤드헌팅사 고위관계자는 “미국은 (한국과 일본 같은) 공채 문화 자체가 없으니 선배도, 후배도, 동기도 없고 오로지 동료만 있다”고 했다. 이 고위관계자는 “나이는 신경 쓰지 않는다”며 “각 직책에 맞는 역할을 가장 잘하는 사람이 그 일을 맡는다는 사고가 뿌리 깊다”고 강조했다. 젊은 사람을 전면에 내세우는 걸 일종의 파괴와 혁신으로 여기는 한국과는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세계 시가총액 톱10 중 미국 기업이 8곳인데, 기자는 이들의 현재 CEO들을 들여다 봤다. 그들의 30대와 40대는 어땠을까.

‘대장주’ 애플 CEO는 팀 쿡(61)이다. 그가 고위 임원으로 볼 수 있는 수석부사장(senior vice president) 명함을 받아든 건 1998년 애플로 이직하면서다. 당시 38세였다. 이전 직장 컴팩에서 역임했던 부사장(vice president)까지 하면, 이미 30대 중반부터 회사를 움직일 만한 중책을 맡았다.

시총 2위 마이크로소프트(MS)를 이끄는 사티아 나델라(54)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40세 때인 2007년 MS의 온라인연구개발부를 이끄는 수석부사장 타이틀을 달았다. 순다르 피차이(49) 구글 CEO는 39세 때 크롬부문 수석부사장에 올랐고, 앤디 재시(53) 아마존 CEO는 38세 때부터 고위 임원 역할을 수행했다. 이번에 트위터 CEO가 된 아그라왈이 ‘C(Chief)-레벨’ CTO를 맡았을 때가 34세다.

이들이 30대 때 리더십을 검증 받은 후 CEO에 오르면 오랜 기간 회사의 틀을 잡는다는 점 역시 눈에 띈다. 쿡, 나델라, 피차이는 각각 10년, 7년, 6년간 CEO로 일했고, 당분간 이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테슬라의 경우 일론 머스크(50)가 2004년 인수 후 17년간 이끌고 있다. 차기 CEO 자리를 위해 ‘대기하고 있는’ 후배들이 있으니 몇 년 하고 물러나야 한다는 한국식 문화를 찾기 어렵다.

세계 시총 7~8위인 메타(구 페이스북)와 엔비디아는 창업자가 아직 회사를 이끌고 있다. 애플, MS, 구글, 아마존, 테슬라와 또 다른 사례다. 마크 저커버그(37)와 젠슨 황(58)은 각각 20세, 30세 당시 회사를 세웠다.

미국 기업 문화, 한마디로 ‘규칙 없음’

현지의 한 한국계 기업인은 “30대 임원, 40대 CEO가 많다는 건 조직 구성원들이 나이와 상관 없이 다양한 직책들이 있다는 점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라며 “성과로 증명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는 반대로 나이가 많다고 해서 눈치 볼 필요가 없다는 뜻도 된다. 월가 금융사 중 시총이 가장 큰 JP모건체이스(세계 12위)의 제이미 다이먼(65)은 2005년부터 16년간 CEO로 일하고 있다. 세계 시총 10위인 버크셔 해서웨이의 워런 버핏 CEO는 91세다.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CEO가 쓴 ‘규칙 없음(No Rules)’이 미국 기업을 대변하는 가장 적확한 표현일지 모른다.

삼성전자(005930)가 최근 연공서열 파괴를 골자로 한 인사 제도를 발표했다. 30대 임원이 나올 수 있는 제도라고 한다. 삼성전자는 빅테크들과 ‘맞짱’을 뜨고 있는, 또 뜰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한국 회사다.

또다른 한 산업계 인사는 “(정년까지 버티면 기계적으로 직위와 임금이 오르는) 경직적인 문화로는 세계 최고들과 속도 경쟁에서 이기기 어렵다”며 “삼성 입장에서는 보여주기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국 특유의 평등 문화, 나이에 따른 체면 중시 문화가 기업에게 독이 될 수 있다는 경고로 읽힌다.

(사진=AFP 제공)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 왼쪽)이 지난달 22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 구글 본사에서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와 만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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