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들 사이에선 일명 '까빠'라는 말도 등장했다. 아티스트의 부족한 점에는 조언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변함없이 그들을 지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력은 당연... 실력파 가수라는 단어자체가 모순"
HOT, 젝스키스 등이 활발할게 활동하던 1990년대 후반을 시작으로 '2세대 아이돌'로 대표되는 소녀시대와 원더걸스, 동방신기가 활동하던 2000년대 중후반, 엑소와 방탄소년단 등 '3세대 아이돌'의 활동 시기인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그룹 간 라이벌 구도는 매우 뚜렷했다.
때문에 특정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실력이나 인성 등의 논란이 일면 라이벌 그룹의 팬덤에게는 좋은 먹잇감이 되곤 했다. 해당 그룹의 팬들은 일명 ‘내 새끼 감싸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팬들의 행보는 달라졌다. 실력이 없는 멤버에겐 사랑의 회초리를 들기 시작한 것.
김서경 씨는 “요즘엔 ‘까빠(까면서 빤다. '빤다'는 연예인을 좋아하는 것을 이르는 속어)’라는 말이 있다”며 “ 무작정 잘한다며 응원하기보단 실력이 부족할 때는 단호하게 지적하고 넘어간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팬으로서 아티스트의 잘못된 점은 잡아주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을 제공하는 게 진짜 팬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라며 “이후 아티스트가 우리(팬들)의 피드백을 받아들여 한층 성장한 모습을 보이면 더할 나위 없이 뿌듯하다”고 전했다.
김모(24·여)씨는 아이돌을 바라보는 팬들의 시각도 많이 변화했다고 했다. 김씨는 “과거처럼 아이돌을 무작정 좋아하고 동경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는 않는다"며 "한 명의 직업인으로 보는 시각이 많아졌다. 하나의 직업으로 보다보니 그들의 실력에 엄격한 잣대를 댄다"고 말했다.
이같은 시각의 변화에 따라 아이돌 그룹이나 멤버에게 ‘실력파 가수’라는 말 자체가 모순이라고 전했다. 그는 “또래들은 상상할 수 없는 인기와 부를 누리면 그에 응당하는 실력은 당연히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팬들의 요구점을 인지한 듯 아이돌 시장도 취업시장과 같이 점점 ‘고 스펙화’되고 있다.
‘탈덕’한 팬이 제일 무서워요
최근 아이돌 팬들 사이에서 화제인 유튜브 채널이 있다. 바로 ‘조용한 탈덕러’다.
이 채널에는 노래나 춤 실력이 부족한, 혹은 데뷔 이래로 실력 성장이 더딘 아이돌 그룹 멤버들의 영상이 게재된다. 탈덕이란 벗어난다는 뜻의 '탈(脫)'과 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을 이르는 '덕후'를 합친 말이다. 팬들 사이에선 팬 활동을 그만두는 것을 의미한다.
댓글 창은 해당 멤버들을 깎아내리는 내용의 댓글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팬들의 댓글은 단순한 비난성 댓글보단 풍자에 가깝다. 애정을 가진만큼 혹은 애정을 가졌던 만큼 비판은 날카롭다. 데뷔 때부터 이어진 논란과 그에 대한 팬들의 실망감을 일목요연하게 그리고 여과 없이 드러낸다.
조용한 탈덕러 채널의 구독자 김주미 씨는 "학창 시절 가장 좋아했던 '최애' 멤버가 채널에 올라왔다"며 "실력 논란이 인 걸 보고 마음 한구석이 아프면서도 언젠가는 도마 위에 오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그는 "영상의 댓글을 보면 팬이거나 팬이었던 사람들이 단 게 대부분"이라며 "내용을 보니 다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었구나 싶더라. 그래도 애정이 있으니 호된 말도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예전처럼 열렬히 좋아하진 않지만 그래도 이젠 실력이든 인성에 관해서든 좋은 소식만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애정섞인 비판이 통하지 않는 부분도 있다. 바로 아티스트의 '인성'이다.
얼마 전 연예계가 학교폭력 이슈로 화제였을 당시 가해자로 지목된 아이돌의 팬들은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단호하게 아티스트에게서 등을 돌렸다.
가장 크게 논란이 됐던 (여자)아이들 수진의 경우, 디시인사이드 (여자)아이들 갤러리에서 소속사와 아티스트에게 사안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고 나아가 탈퇴까지 진정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디시인사이드의 연예인 갤러리는 공식 팬클럽과 맞먹는 위력을 갖는다.
수진의 팬이라는 최화영 씨는 "팬들마다 윤리적 가치관이 다르다고는 하나 학교폭력처럼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사안은 아마 대다수가 용납하지 못할 것"이라며 "연예인은 공인이다. 공인으로서 바른 행동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어 "(문제가 있음에도) 감싸는 팬들은 보통 아직은 미성숙한, 연령대가 낮은 이들이다"라고 덧붙였다.
이성환 씨는 "아무리 외모나 실력이 출중하다고 해도 인성 결함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라며 "(수진의) 팬으로서 학폭 이슈 이후 아티스트가 여러 곳에서 질타를 받는 것이 마음 아팠다. 하지만 팬으로서 그를 옹호할 마음은 없다"고 했다.
그는 "아무런 죄가 없는 타 멤버들은 같은 그룹이라는 이유만으로 함께 비난을 받게된다"며 "뿐만 아니라 가해자가 버젓이 활동하는 모습을 피해자가 보면 얼마나 마음이 아플지 상상이 안 간다"고 전했다.
상습적으로 마약을 밀매하고 흡연한 혐의를 받은 그룹 비투비의 멤버 정일훈의 사례도 비슷했다. 팬들은 냉정하리만큼 단호하게 돌아섰다.
안소연 씨는 "비투비는 데뷔 이래로 큰 사건사고 없이 지내온 이른바 '클린돌'이었다. 그런데 그룹 이미지에 타격이 갈만한 큰 사건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대마초 흡연 대한 인식은 문화권에 따라 다르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엄연한 불법"이라며 "비투비라는 그룹의 팬이었기에 정일훈 역시 좋아했지만 개인의 행동이 그룹 전체에 피해를 줘선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아티스트를 바라보는 팬들의 시각이 '장기적'으로 변화했다"며 "특히나 아이돌 그룹의 팬들은 타 그룹의 팬덤으로 부터 자기 아티스트를 무조건적으로 보호하려고 했으나 요즘엔 '어떤 게 우리 ㅇㅇ에게 더 도움이 될까'를 생각하는 편"이라고 분석했다.
과거 팬 문화와 달리 최근에 두드러지는 특징이 하나 더 있다고도 전했다. 바로 그룹 중심의 팬 문화가 멤버 '개인'을 좋아하는 형태로 변모했다는 것.
김 평론가는 "특정 멤버에 대한 관심이 그룹에게도 옮겨가는 것"이라며 "때문에 다른 멤버로부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멤버가 피해를 받지 않길 바라는 마음도 크다. 결국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는 걸 막기 위해 팬들은 아이돌들의 논란에 엄격해지는 것"이라 설명했다.
이어 "이런 팬들의 목소리를 소속사 역시 무겁게 생각한다"며 "아이돌 그룹 내에서도 멤버별 유닛을 구성해 별도로 앨범을 내는 등 활동을 한다. 그룹의 활동 수명이 다한 후 멤버 개인이 활동하는 사례가 많아지는 것 역시 이 흐름과 관련있다"고 덧붙였다.
/스냅타임 김세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