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국엔 화장지가 넘쳐 흐른다"...사재기 없는 이유

'국난 극복할 것' 코로나19 대응 신뢰도↑
가짜뉴스부터 욕실구조·유통환경 등 영향 다양
  • 등록 2020-03-28 오전 12:05:00

    수정 2020-03-28 오전 12:05:00

[이데일리 박한나 기자] 일상에서 생기는 의문을 [왜?] 코너를 통해 풀어봅니다.

“한국은 사재기는 커녕, 화장지가 넘쳐 가게 밖에 나와 있다.”

“코로나19가 창궐하는데도 한국은 화장지가 넘쳐 흘러 가게 밖에 나와 있다.” (사진=트위터 캡처/@sokeel)
한국계 영국인인 한 누리꾼이 지난 14일 올린 이 트윗은 인기를 끌면서 여러 커뮤니티까지 확산됐다. 사진 속 한 마트 앞 매대에는 30개씩 포장된 화장지 묶음이 가득 쌓여 있다.

우리 입장에서 화장지가 쌓여 있는 게 별 일도 아니지만 최근 휴지 대란을 겪고 있는 국가의 누리꾼들은 댓글에서 “당신의 화장지는 귀중하다”며 소중함을 일깨웠다.

최근 미국, 호주, 유럽, 일본 등에서 시민들이 마트에서 화장지를 사기 위해 줄을 서고 1인당 제한 수량을 채워 카트에 가득 싣는 모습이 전해졌다. 우리 주변 화장지의 가치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탓에 ‘대체 왜 화장지를 사재기하느냐’는 궁금증이 생긴다. ‘내가 모르는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라는 의구심도 커지면서, 포털에서 ‘사재기’를 검색하면 관련검색어로 ‘화장지 사재기 이유’가 나온다.

세계 곳곳 화장지 대란...한국은 ‘어리둥절’

마스크도 식량도 아닌 하필 화장지 구매가 급증한 이유는 뭘까. 그리고 왜 한국에서는 사재기 현상이 나타나지 않고 있을까.

우선 화장지는 우리 생각보다 중요한 생필품이다. 비데나 물로 씻는 것으로 대체할 수 없다면 말이다.

비데 보급률이 낮은 미국인은 비데를 처음 쓴 것으로 알려진 프랑스인보다 연간 2배 상당(141개)의 두루마리 휴지를 사용한다는 조사(미국 천연자원보호협회(NRDC) 2019년 보고서)가 있다. 바닥 수챗구멍이 없고 샤워부스나 욕조에서만 물을 쓰는 화장실 구조상 ‘셀프 비데’도 여의치 않으니, 최소한의 위생용품 확보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두 번째로는 널리 퍼진 가짜뉴스다. ‘코로나19 탓에 중국 화장지 공장에 문제가 생겼다’, ‘마스크와 화장지를 같은 원료로 생산하기 때문에 곧 수량이 부족해진다’는 것. 그러나 실제로 중국 화장지 공장에는 문제가 없고 사재기가 발생한 국가들 대부분은 화장지를 중국 수입이 아닌 자체 생산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까지 “진정하라. 누구도 생필품을 비축할 필요는 없다”며 달래기에 나섰지만 사태는 쉽사리 해결되지 않고 있다. 생필품을 구하지 못하거나 아주 비싼 값에 사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이다.

이런 불안은 우리도 경험했다. 코로나19 사태 후 마스크 업자들이 사재기를 하면서 가격은 점점 올라갔고 이후에는 평소보다 훨씬 비싼 값으로도 구하기 어려웠다. 또 지역 봉쇄까지 거론될 당시 생필품 조달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 팬데믹’을 선언한 12일 서울 시내 한 마트 모습 (사진=연합뉴스)
외신이 본 韓 ‘코로나19’대응... ‘사재기 없을 만해’

일시적인 현상에서 그친 이유는 불안은 줄고 통제감은 회복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보건당국을 비롯해 우리 사회가 적절히 대응하고 있고, ‘국난 극복이 취미이자 특기’라는 우스갯 소리처럼 이번 위기 또한 차분히 이겨내자는 분위기가 자리 잡았다.

외신도 확진자가 대거 발생한 한국에서 사재기나 공황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 배경을 이같이 분석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23일(현지시간) ‘한국은 어떻게 코로나19 곡선을 완만하게 만들었는가(How South Korea Flattened the Curve)’라는 기사에서 한국의 대응 방식이 곧 차분한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NYT는 한국이 드라이브 스루 등 빠르고 정확한 방식으로 압도적으로 많은 양의 검사를 시행했고 확진자 현황을 투명하게 공개했다고 보도했다. 이같은 보건당국의 노력에 한국 국민들의 지지와 사회적 신뢰가 높은 상태라고 전했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사재기가 불필요한 상황을 직시한 것이다.

관련 기사 댓글에서 한 누리꾼은 “한국은 사재기를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쟁여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문득 우리 집 냉장고 속을 떠올려 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겉절이부터 묵은지까지 각종 김치와 된장, 고추장, 마른반찬 등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많다. 두어 달에 한 포대씩 사는 쌀은 아직 많이 남았고 상자째 사둔 라면도 있다.

구매처가 다양한 환경의 영향도 있다. 편의점과 대형마트, 온라인쇼핑몰, 이커머스 업체까지 생필품을 주문할 수 있는 곳은 다양하다. 여러 유통기업에서도 최근 특별한 사재기 흐름이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소비자들이 평소보다 많이 사더라도 생산과 유통 여력이 충분한 상황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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