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용품=반려용품"...性 앞에 당당해진 여성·청소년

남성 전유물 성인용품점 음지에서 양지로
여성도 당당히 자기 욕구 표현애야
청소년 성경험 13.1세...안전한 성생활 보장, 보호해야
  • 등록 2019-01-26 오전 12:10:14

    수정 2019-01-26 오전 12:10:14

얼마전 첫 20대 생일을 보낸 대학생 서현지(19·여)씨는 친구들이 준비한 선물만 생각하면 낯부터 뜨거워진다 했다. 정성스레 포장된 선물 상자를 열자마자 여러가지 종류의 성인용품과 콘돔 세트가 쏟아져나왔기 때문이다. 서씨가 더 놀란 건 친구들의 답변 때문이었다. 서씨는 "자신을 뺀 친구들 모두가 성인용품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며 "건강한 성생활과 피임을 위해 남성 뿐 아니라 여성도 늘 콘돔을 챙겨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많다. 성인용품이 어느새 여성들의 '반려용품'이 됐다는 우스갯소리가 생길 정도로 여성들의 성(性)적인 욕구와 표현들이 당당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욕구를 솔직히 표현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1020세대 문화가 성(性) 인식 변화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음지(陰地)의 영역에 있던 성인용품이 양지(陽地)로 올라오고 있으며 기호에 맞는 성인용품을 소비하고 성적인 욕구를 당당히 인정하고 표현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 성생활을 성인의 영역으로 한정짓는 기존의 통념을 깨부수려는 움직임들도 보인다.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피임법 등 실생활에 필요한 성교육을 가르치고 이들이 안전한 성생활을 누릴 수 있게 기성세대들도 인식을 바꿔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추세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 위치한 대형 성인용품샵. (사진=스냅타임)


성인용품 음지에서 양지로...남성 전유물 통념 깨져

수 년 전까지 성인용품은 20대 이상 남성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져왔다. 여성과 청소년들이 성적 욕구를 표현하고 상품을 소비하는 것을 부끄럽거나 유해한 행동으로 간주하던 사회분위기 탓이다. 모텔과 성인용품점들이 늘 인적이 드문 골목이나 구석진 음지에 위치해있는 것도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서울 강남, 홍대, 이태원 등 번화가에 대형 성인용품샵이 들어서면서 여성고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 풍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기존의 성인용품점들은 허름한 간판과 내부가 보일 수 없게 막아놓은 인테리어로 음습한 분위기를 풍기는 곳들이 대부분이었다. 최근의 성인용품점들은 이와 달리 유리문으로 내부가 훤히 보이는 구조를 갖추고 아기자기한 캐릭터 소품들을 깔끔히 진열해 놓는 등 세련된 인테리어로 일종의 관광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성인용품점 매장 직원 김모(30·여)씨는 "성인용품점을 방문하는 고객 대부분이 여성 고객"이라며 "성평등,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여성들도 자신의 욕구를 솔직히 표현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게 이같은 풍경에 한 몫한 것 같다. 요즘 성인용품점들이 세련되고 아기자기한 인테리어로 탈바꿈해 거부감이 줄어든 영향도 있다"고 말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여성 "性, 부끄럽지 않다"...여럿이 공유하는 관심사로

회사원 성수현(27·여)씨는 "성생활은 남녀가 모두 누리는 것인데 여성은 늘 남성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하는 존재로만 인식돼왔다"며 "그런 점에서 이색 성인용품점이 많아지고 성인용품을 이용하거나 콘돔을 챙겨 다니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는 지금의 변화가 매우 반갑다. 이번 주말 남자친구와 데이트코스로 이색 성인용품점을 가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대학원생 탁희진(26·여)씨도 "얼마 전 친구들 집에 놀러갔는데 성인용품을 하나씩 두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며 "어떤 성인용품, 콘돔이 자신에게 맞고 좋은지에 대해서도 거리낌 없이 대화하는 분위기다. 이런 변화들을 보며 오히려 내가 많이 닫혀 있었음을 깨닫는다"고 했다. 김종갑 건국대 몸문화연구소장은 이같은 변화에 대해 "과거까지만 해도 성적 행위는 남성의 본능, 부끄러운 것이기 때문에 음지에서 이뤄져야 하는 행위로 여겨졌지만 최근 들어 남녀 모두가 누리는 문화적 행위, 놀이 문화 등으로 재인식되고 있다”며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공유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하나의 관심사로 자리매김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청소년 평균 성경험 13.1세...피임 절반 뿐

성을 미성년자들이 접근할 수 없는 금기로 여기던 통념도 서서히 깨지고 있다. 성경험을 겪는 청소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고 그 연령대도 점점 당겨지고 있는 만큼 '성=비행'이라는 인식을 주입해 금지하는게 능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다양한 성교육과 피임법을 가르쳐 청소년들이 안전한 성생활을 누리고 보호받을 수 있게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교육부·보건복지부·질병관리본부에서 발표한 ‘제14차(2018년) 청소년 건강행태조사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청소년 6만 40명 중 5.7%(3422명)가 성관계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관계를 경험한 청소년들의 평균 연령은 13.1세였다. 그러나 이들 중 피임을 실천한 경우는 59.3%에 그쳤다. 이는 청소년들이 콘돔을 자유롭게 구매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있지 않은 탓이 크다. 개방된 성문화 인식을 지닌 젊은 세대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콘돔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수십년 전 과거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을 위한 콘돔 공급 업체 이브콘돔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콘돔 이용 실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조사에 응한 132명 중 31.8%(42명)가 "콘돔을 살 때 주변 시선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콘돔을 살 때 미성년자로 의심받지 않도록 사복을 입고 진한 화장을 한다"고 응답한 청소년들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청소년도 안전한 性 누려야...기성세대 인식 전환 필요

사실 청소년에게 콘돔을 판매할 수 없다는 법적 근거는 없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콘돔은 법적으로 청소년들도 구매할 수 있는 의료기기에 속한다"며 "약국이나 편의점에서 청소년에게 콘돔을 판매하지 않는 것은 해당 가게가 자의적으로 판단한 행동일 것이다. 미성년자가 콘돔을 사용해선 안된다는 규정이 없다"고 설명했다.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양지원(17) 양은 "청소년들의 성생활을 부추기는 것은 문제지만 무작정 몰라야만 하는 비행으로 여기는 교육 시스템과 기성세대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어떤 변수에 노출될지 모르기 때문에 올바른 피임법과 콘돔 사용법 정도는 청소년들에게 제대로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같은 문제점을 인식해 청소년들을 위한 콘돔 사업을 진행하는 업체들도 생겨나고 있다. 소셜벤처 '인스팅터스'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비건(Vegan) 인증을 받은 친환경 콘돔을 판매하는 자판기를 전국 각지에 설치했다. 자판기 전면에 올바른 성생활을 설명하는 안내문구를 기입하고 100원에 2개씩 저렴한 가격에 판매 중이다. 전문가들은 개방되고 있는 성문화와 젊은 세대들의 인식에 발맞춰 기성세대도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조언한다. 배정원 행복한성문화센터 소장은 "올바른 성교육을 선행해야한다는 것을 전제로 청소년들에게 바람직한 성문화 인식을 함양하고 임신 등 문제에 노출되지 않을 수 있게 콘돔 접근성을 높여줄 필요가 있다"며 "청소년들의 성경험을 막을 수 없다면 더 큰 위험이 발생하지 않고 이들이 안전한 성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게 보호하는 게 먼저"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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