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통토크]"주거용에만 목메는 건설업…이젠 복합개발 등 중장기 계획 필요"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원장
"민간기업의 싱크탱크 되겠다"
  • 등록 2016-02-29 오전 5:30:00

    수정 2016-02-29 오전 5:30:00

△10년만에 ‘친정’인 한국건설사업연구원으로 돌아온 이상호 원장은 시장에 혼란을 주지 않는 일관된 정책이 필요하며 건설사 역시 중장기적인 전략을 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 = 김정욱 이데일리 기자
[이데일리 정수영 기자] “벌써 두 달이 지났다고요? 참 빠릅니다. 그런데 되돌아보면 짧은 시간은 분명히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가 짧다고 느끼지만 되돌아보면 길었다고 생각되는 것.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이는 열심히 일한 사람만이 느끼는 공통점 아닐까. 많은 일을 열심히 했기에 가질 수 있는 시간 관념일 것이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는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원장이 바로 이런 사람이다. 지난해 12월 28일 취임한 이 원장을 지난 25일 집무실이 있는 서울 논현동 건설회관 11층에서 만났다. 이날 이 원장의 얼굴은 일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해 보였다. 오랜만의 친정집 ‘컴백’이 그를 설레게 한 걸까.

“책상머리 연구는 안된다. 현장을 봐야 한다”

10년 만이다. 이 원장이 친정집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하 건산연)으로 돌아온 것은. 그것도 ‘원장’이란 타이틀을 달고 화려하게 복귀했다. 2007년 한창 유명 연구원으로 이름을 날리던 시절, 그는 민간 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GS건설 경영연구소 소장이란 직책을 달고 현장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이후 한미글로벌 사장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지만, 얼마 전 친정인 건산연으로 다시 돌아왔다.

“10년간 저는 항상 현장에 있었어요. 연구원 시절, 학자가 책과 논문에만 몰두해 현실을 잘 모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죠. 마침 날 필요로 하는 곳이 있었고, 현장 속으로 들어가 봐야겠다는 생각에 떠난 거죠. 현장의 어려움과 문제점까지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

그렇다면 민간 기업 최고경영자(CEO)란 잘 나가는 직책을 던지면서까지 다시 돌아온 이유는 뭘까? “그동안 쌓은 현장 감각을 원래 제 본업인 연구 업무에 접목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후배 연구원들에게도 강조합니다. 현장을 직접 가보고, 현장 사람들 얘기를 많이 들으라고요.”

최근 시행한 조직 개편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건산연은 지난 11일 건설산업 환경 변화 대응 및 산업 혁신에 중점을 둔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구체적으로 정책연구 기능 강화, 금융·보증 연구 수요 대응, 건설산업 혁신 및 신규 건설수요 창출 모색, 연구 기획·조정기능 강화에 초점을 뒀다.

“건산연은 민간 연구소입니다. 민간 연구기관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합니다. 건설업계가 피부로 느끼는 정책의 문제점 개선을 제안하고, 설득하는 작업을 할 것입니다. 특히 지역 중소 건설업계를 지원하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할 생각입니다.”

이 원장은 연구원의 경쟁력 향상에도 주력할 생각이다. “연구기관의 경쟁력은 연구자의 경쟁력에 달렸습니다. 우수 인재 영입과 양성에도 힘쓸 생각입니다. 민간 연구원인 건산연이 건설업계 최고의 싱크탱크가 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현명한 정책 필요…“시장 기절시키지 말아야”

건설업계 싱크탱크가 되겠다는 이 원장에게 현재 어려움이 큰 주택시장을 풀어나갈 혜안을 물어봤다. “지금 정부는 양쪽에서 상반된 시그널을 주고 있어요. 주택시장은 공급 과잉이 아니라고 달래면서도 한쪽에선 대출 규제를 하고 있잖아요. 부동산 수요자로서는 시장이 어떻게 흘러갈지 헷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무엇보다 현명한 정책적 대응이 필요합니다.”

이 원장은 특히 주택 건설업계가 공급 물량을 줄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건설사로서는 이미 확보해 놓은 땅에 대한 금융 비용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어요. 또 정부가 공급 물량을 조절한다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나요. 인력은 어떻게 할 것이며 매출 손실은 어찌합니까? 신규 수주는 안 해도 계속 사업은 할 수밖에 없는 거죠. 정부가 말로만 안심시킬 게 아니라, 주택시장이 원활히 돌아가도록 해 건설산업이 경색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시장 기절시키는 정책은 안됩니다.”

이 원장은 더 큰 문제는 내년부터라고 봤다. “내년부터 입주 아파트가 한꺼번에 쏟아지면 입주 지연이나 계약 취소 사태가 발생할 수 있어요. 2009년에도 비슷한 사태가 벌어졌는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시작된 시장 침체 때문이었죠.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시장이 활기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최소한 시장을 억누르지는 말아야지요.”

전세시장에 대해서는 “전세의 월세 전환은 더이상 거스르기 어려운 대세”라고 이 원장은 진단했다. “이미 시작된 월세 전환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공급량이 늘면 전셋값도 떨어질 테고, 또 월세 물량이 많이 나오면 집주인들이 자발적으로 보증금을 올리고 월 임대료를 내릴 겁니다. 정부가 나서서 인위적으로 조절할 게 아니라, 시장이 자율적인 조절기능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완다그룹의 지혜 배워야…“단기 경영의 덫 피하라”

이 원장은 건설업계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우선 해외건설 시장의 경우 올해 긍정적 요소와 부정적 요소가 상존한다고 분석했다. “올해는 우리 기업들이 다른 나라에 비해 경쟁력이 높은 이란시장이 활짝 열리고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출범으로 아시아지역 건설시장이 확대되는 것도 장점입니다.”

하지만 그는 저유가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고 걱정했다. “중동 저유가는 1~2년 만에 끝날 상황이 아닙니다. 특히 중동은 플랜트 자체 발주를 지연하고 있어 이쪽 분야 비중이 많은 우리로서는 우량 프로젝트 발굴이 어려울 수 있어요.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눈에 보이는 것 아니겠습니까? 중동 의존도를 줄이고 아시아 등 신시장 개척에 나서야겠지요. 또 플랜트 위주인 수주분야 다변화도 올해부터 꼭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이 원장은 지난해 158조원을 수주한 국내 건설시장도 올해는 어려움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우리 기업들의 국내 건설 수주액은 지난해보다 30조 이상 감소한 120조원 정도에 그칠 것으로 보여요. 그만큼 발주 물량이 줄어든다는 건데요. 갑자기 수주 물량이 줄면 현장 건설기계 소리도 줄어들 수밖에 없고, 경제 성장에도 영향을 주지 않겠습니까?”

이 원장은 다만 우리 기업들도 단기 성적에 급급할 게 아니라 중장기 전략을 짜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대표적으로 중국의 완다그룹 경영 전략을 예로 들었다. “중국 다롄지역에서 시작한 이 기업은 현재 중국을 대표할 뿐 아니라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섰어요. 30년에 걸쳐 현실에 머물지 않고 계속 변화를 꾀한 결과입니다.”

중국 다롄지방 부동산 회사로 시작한 완다그룹은 이후 사업지역을 중국 전역으로 확대하고, 사업 분야도 상업용 부동산으로 넓혔다. 이후 완다그룹은 타 산업과의 융합을 꾀했다. 영화와 리조트 산업을 접목, 복합 개발을 추진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해외 업체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원장은 우리 건설업체들도 중장기 전략을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건설업계의 경우 여전히 국내 주택산업에 머물러 있는 업체가 많습니다. 복합 개발 등으로 영역을 확대해야 합니다. 단기 경영의 덫에 빠지지 말고 중장기 전략이 필요합니다.”

△이상호 원장은…

1964년 경남 김해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정책연구실장, GS건설 전략담당 겸 경영연구소장, 한미글로벌 사장을 거쳐 지난해 12월 말 건설산업연구원 원장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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