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RS는 사스인데 MERS는 왜 메르스인가요?

외래어표기법상으론 '머스'로 불러야
  • 등록 2015-06-13 오전 1:00:00

    수정 2015-06-13 오후 12:36:55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SARS는 사스인데 MERS는 왜 머스가 아닌 메르스인가요.’

MERS가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12일 오전 감염자 126명, 사망자 10명, 감염의심자가 2919명입니다. 단순히 숫자뿐 아닙니다. 공공장소에선 마스크가 일상이 됐습니다. 심지어 특정 지역은 거리조차 한산하다고 하죠.

글을 써서 먹고살다 보니 이런 엄중한 상황 속에서도 문득 표기에 대한 궁금증이 고개를 듭니다. 2002년 중국을 중심으로 퍼져 공포를 몰고 온 사스(SARS)는 왜 ‘사스’로 부르고 MERS는 ‘메르스’로 부를까요. ‘머스’라고 해야 맞지 않을까요. SNS를 보니 이 궁금증을 가진 사람이 저뿐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스 표기에 대해선 이견이 없습니다. 국립국어원은 외래어표기법 용례로 SARS(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의 한글 표기를 ‘사스’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국립국어원과 국립보건원은 사스 전염 공포가 휩쓸고 지나간 2003년 4월4일 SARS의 한글 표기를 사스로 정했죠.

국립국어원은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는 신형 중증 폐렴을 괴질(怪疾) 대신 ‘사스’로 표기하기로 했다”며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을 ‘에이즈’로 표기하는 것 같은 경우”라고 소개했습니다.

참고로 영문 약자인 SARS는 외래어표기법 규정에 따라 ‘에스에이아르에스’ 혹은 ‘사스’로 읽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MERS’입니다. 이 신흥 전염병에 대해선 이렇다 할 치료법도 없고 전염 방법도 아직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것처럼 명확한 한글 표기방식도 규정되지 않았습니다.

MERS는 영어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중동호흡기증후군)’의 약자입니다. 2013년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을 중심으로 처음 감염자가 확인됐고 세계보건기구(WHO)는 MERS 코로나 바이러스로 명명한 게 그 시작이죠.

아직 규정된 게 없는 외래어라면 국립국어원 외래어표기법에 맞춰 이름을 짓는 게 가장 정확합니다.

즉 MERS는 ‘메르스’가 아닌 ‘머스’, 머스가 아니라면 ‘엠이아르에스’로 불러야 더 정확하겠죠. 처음부터 ‘머스’라고 불렀어야 한다는 게 한글 전문가의 지적입니다.

그렇다면 왜 처음 메르스로 부르기 시작했을까요. 추측이지만 MERS를 처음 소개한 언론 보도가 이어지고 이어지다 보니 메르스로 굳어진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MERS가 국내 언론에 처음 소개된 건 2013년 5월 한 언론의 두바이 특파원 발 뉴스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신종 바이러스 환자가 발생했다며 이 바이러스의 명칭 MERS를 소개했죠.

중동발 소식이었던 만큼 아랍인이 알파벳을 읽는 방식이 기사에도 반영된 게 아닌가 추측해봅니다. 영어로는 ‘머스’이지만 남부 유럽이나 중동에서는 ‘메르스’와 비슷하게 발음하는 게 보통입니다. 물론 MERS는 영어 약자이기 때문에 ‘머스’로 읽는 게 더 정확하다는 건 변함없습니다.

MERS는 이후 전 세계로 확산해 나갔고 이를 보도하는 국내 언론도 처음 표기한 대로 계속 메르스로 불렀죠.

지난 5월20일 국내 첫 감염자가 확인됐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일부 언론은 ‘머스’로도 부른다는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지만 대세는 ‘메르스’였습니다. 정부도 당국도 이렇게 불렀습니다.

이제 ‘메르스’를 ‘머스’로 고쳐 부르기는 어려울듯합니다. 전 국민에게 알려진 건 한 달도 안 되지만 전파 속도는 어마어마했으니까요. 이미 시골 어르신, 동네 꼬마까지 가릴 것 없이 누구나 메르스로 부릅니다.

잘못된 외래어 표기를 쓰다가 바로잡은 예도 있습니다. 스마트폰 보급과 함께 대중화한 외래어 애플리케이션(application)·앱(app)은 초창기 ‘어플’이란 잘못된 표기로 소개됐으나 지금은 대부분 정확히 쓰는 것 같습니다. 최소 주요 언론에서만큼은 말이죠.

그러나 많은 외래어는 여전히 처음 들어온 대로 쓰입니다. 독일 자동차 회사 BMW가 독일어식 발음인 ‘베엠베’가 아닌 영어식 ‘비엠더블유’로 굳어지고, 중국 액션 스타 성룡이 중국식 발음 ‘청룽’이 아닌 한자식 발음 ‘성룡’이 된 것처럼 말이죠.

참고로 BMW는 스스로 한국법인명을 비엠더블유코리아로 한만큼 이젠 비엠더블유로 부르는 게 맞게 돼 버렸습니다. 고유명사는 외래어표기법을 떠나 불러달라는 대로 불러줘야 하니까요.

성룡은 분명 ‘청룽’이지만 한자문화권이다보니 저부터 바꿔부르기 어색하네요. 제가 쓴다면 ‘청룽(성룡)’처럼 함께 쓸 것 같아요. 국립국어원은 신해혁명(1911년) 이전 인물에 대해선 한자식 표기, 이후 현대 인물은 중국어식 표기를 원칙으로 합니다. 삼국지 유비·조조를 리우페이·차오차오로 부를 필요는 없다는 거죠.

메르스도 이처럼 꼭 잘못이라고 하기는 애매합니다. 아직 규정도 없고, 언어란 게 꼭 규정대로만 가지 않거든요. 많은 사람이 오랜 기간 표기한 방식은 비록 법칙에 맞지 않더라도 표준어가 됩니다. 버내너(Banana)가 바나나라는 표준어로 굳어진 건 유명하죠.

그럼에도 처음부터 MERS를 머스로 불렀다면 하는 아쉬움은 남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한글은 소중하고 또 과학적이니까요. 이런 불규칙이 쌓이면 한글을 배우는 외국인은 힘들겠죠. 모두들 학창시절 영어 공부할 때 ‘불규칙 동사’ 싫어하셨죠?

더 아쉬운 건 당국의 발빠른 대처입니다. 지금처럼 크게 번지지 않았다면 대부분은 여전히 MERS란 단어 자체를 모르고 살았겠죠. 어떻게 불러야 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고요.

새로운 감염·사망자 소식이 끊이지 않아 걱정입니다. 전파 속도로는 세계 최고라고 합니다. 어떻게 부르든지는 사실 그다음 문제입니다. 그러나 이러다가 WHO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를 ‘한국’호흡기증후군(SKRS, South Korea Respiratory Syndrome)로 바꿔 부를까봐 걱정입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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