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병 환자들, 두 번 운다

의사들조차 희귀병 증상 몰라
진단 받는데만 수 년 걸려, 완치는 꿈 못꿔
정부, 환자 수조차 파악못해..지원은 중구난방
  • 등록 2012-02-13 오전 6:00:00

    수정 2012-02-12 오후 9:44:46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2월 13일자 8면에 게재됐습니다.
  [이데일리 정유진 기자] 서울 성동구 금호동의 김정미(여·56·가명)씨는 3년 전부터 어지럽고 몸이 무거운 증상으로 고생해왔다. 집 근처 병원을 찾았지만 의사로부터 단순한 근육통과 관절염이라는 진단을 받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왔다. 그러나 김씨는 어느 날부터는 걸을 수가 없었다. 급히 서울시내 대학병원을 찾았고 ‘척추신경성 실조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척추신경성 실조증은 희귀난치 질환으로 치료가 힘들다는 의사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희귀난치 질환자들은 자신의 병명을 아는 데만 수 년이 걸린다. 희귀난치 질환으로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자신이 어떤 병으로 고통받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지난 2006년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희귀난치 질환으로 진단받기까지 2년 이상 걸렸다고 응답한 희귀난치 질환자는 39.1%로 가장 많았다. 실제 희귀난치 질환자들이 병을 진단받기까지는 평균 4~7년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희귀난치 질환 진단이 어려운 것은 의사들조차 희귀질환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김현주 한국희귀질환재단 이사장(아주의대 명예교수)은 “현재 국내에서는 희귀난치 질환을 제대로 진단할 전문의가 거의 없다”고 단언했다.

한 대학병원 신경과 교수는 “5년전 한 환자가 자신의 병명을 ‘소뇌위축증’이라고 말한 것을 내가 ‘손외위축증’이라고 잘못 쓰다가 망신을 당한 일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이같이 웃을 수 없는 해프닝은 희귀난치 질환자들과 이를 치료하는 의사들 사이에서 심심찮게 발생한다.

제대로된 치료를 받는 것은 더욱 힘들다. 특별한 치료법이 없어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줄기세포 치료에 의존하거나 희박한 확률에 희망을 걸고 신약 임상시험에 참여하다가 사고를 당하는 희귀난치 질환자들이 많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희귀난치 질환자들은 차라리 암에 걸렸으면 무슨 병인지 알고 원없이 치료라도 받아볼 수 있을 것 이라고 한다. 암 환자들은 적어도 자신이 앓고 있는 암이 위암, 폐암 등 어떤 종류의 암인지 알고 있으니 덜 불안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정부도 국내 희귀난치 질환자의 실태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심장병·희귀질환과 박현영 과장은 “국내 희귀난치 질환자 수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아직 없다. 재파악의 필요성을 느낀다”고 말했다.

지원정책도 중구난방이다. 정부는 희귀난치 질환자 지원정책의 일환으로 11개 희귀난치 질환자에 호흡보조기 대여료를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정한 11개 질환을 제외하고는 희귀난치 질환인데다 실제 스스로 숨을 쉴 수 없어도 ‘아직까지 호흡보조기가 필요하다는 것이 입증이 안됐다’는 이유로 보조비 지원을 한푼도 받지 못한다.

국내 환자 숫자가 10명 미만인 희귀난치질환의 경우에는 환자들은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서 특정 치료법이 필요하다고 입증해야 하는 책임까지 있다. 그러다보니 ‘진짜’ 희귀한 질환의 경우 정부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정부는 지난 2000년부터는 혈우병 등 희귀난치 질환 138종을 산정특례 대상으로 지정해 급여 치료비의 10%만 부담하게 해왔다. 이조차도 급여에 해당되는 항목만 지원하고 있어 비급여가 대부분인 희귀난치성 질환 치료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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