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MB, 마지막 기회마저 놓치나

  • 등록 2011-12-27 오전 6:00:00

    수정 2011-12-26 오후 5:39:05

[이데일리 문영재 기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죽음이 아니라 ‘대남 도발’이라는 비상 상황을 가정해 보세요. 한마디로 아찔합니다. 대북 정보력이나 판단력에 심각한 구멍이 뚫린 만큼 책임자들의 경질이 맞습니다.”

송년회 자리에서 만난 한나라당 의원의 단호한 표현이다. 그는 김정일 사망을 둘러싸고 우리 정보 당국과 외교·안보 라인이 드러낸 무능력의 항목을 조목조목 기자에게 설명했다.

실제로 원세훈 국정원장은 지난 20일 국회 정보위에 참석, “김정일 사망 사실을 북한 매체의 공식 발표 전까지 몰랐다”는 취지로 시인했다. 같은날 김관진 국방장관도 국회 국방위에서 “뉴스를 보고 알았다”고 털어놨다.

여야 의원들은 원 원장과 김 장관의 한심한 발언에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성난 국민들도 정보 당국과 외교안보 라인에 대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대북 전문가들은 북한 최고지도자의 사망을 사건 당일 곧바로 파악하긴 힘들었을 것이라면서도 유무선 상에 여러 일들이 있었을 텐데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는 건 큰 문제라고 거들고 있다.

‘먹통’ 정보 라인에 대한 싸늘한 국민 여론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대통령은 이들에게 사실상 면죄부를 주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22일 여야 대표와 회담에서 “외교안보 라인 교체는 정부에 맡겨 달라”며 “김 위원장 사망을 우리 뿐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도 몰랐다. 우리 정보력이 걱정할 만큼 취약하지 않다”고 언급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교체가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청와대 일각에서는 정보·외교안보 라인 교체에 대한 목소리가 크지만 현 체제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사실상 가닥이 잡혔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사태 수습이 이뤄지지 않았고 원 원장 등에 대한 대통령의 신임이 워낙 두텁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해가 가는 대목이 없지 않지만 애써 책임자를 감싸안는 모습은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오히려 국민에게 더 큰 실망감을 안겨줄 수 있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 대통령은 집권 4년 내내 ‘소통 부재’와 ‘측근·회전문 인사’로 홍역을 치렀다. 최근 들어 잇따른 친인척 비리와 내곡동 사저 문제까지 불거지며 임기 말 국정운영에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또 다른 의원은 “이 대통령이 예상치 못한 안보 정국에 민심을 되돌릴 수 있는 어쩌면 마지막 시험대에 올랐다”며 “감싸기만 할 것이 아니라 정보·판단 능력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집권 마지막해인 내년에 ‘경제 안정’을 화두로 던질 계획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잇따른 악재를 극복하고 국민적 지지를 회복하려면 ‘선언적인 구호’보다 등돌린 민심을 되찾는 게 급선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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