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in | 이 기사는 02월 07일 12시 57분 프리미엄 Market & Company 정보서비스 `마켓in`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
장남인 이재용 사장이 전자와 금융계열사를 넘겨 받아 그룹을 이끌고, 장녀인 이부진 사장은 유통과 레저·화학· 무역 등을, 차녀인 이서현 부사장은 광고와 패션, 그리고 전자부품 일부를 맡게 될 것이라는 게 현재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거론되는 구도와 비교해 볼 때 이건희 회장 역시 창업자인 고(故) 이병철 회장이 보여준 `90대 10`과 비슷한 원칙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3세들로의 그룹 분할 작업은 난마처럼 얽혀 있어 단기간에 끝내기가 어려운 일이다. 3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현재까지는 20년간 경영 수업을 받아온 이재용 사장의 승계자 지위가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중론이다. 그러나 CJ와 신세계, 한솔그룹 등 삼성그룹의 방계 역시 만만치 않은 규모로 성장했고, 부진과 서현 두 딸들 역시 당찬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후계 구도 확립을 위한 방법은 물론 장녀와 차녀의 몫이 현재 드러난 것보다 더 많아질 수 있느냐도 관심거리다.
그룹의 후계 윤곽? 이건희 회장은 지난해말 인사 코드로 ‘젊은 삼성`’을 내세웠다. 젊은 피를 대거 수혈하는 한편 이재용 부사장을 삼성전자 COO(최고운영책임자) 사장으로 끌어 올렸다. 이재용 사장은 지난 1991년 삼성전자 부장으로 입사한 지 20년만에 명실상부하게 지휘봉을 잡게 됐다. 그간 계승자로 여겨져온 이재용 사장의 시대가 서서히 본격화하는 듯 하다.
특히 이재용 사장과 때를 같이해 장녀와 차녀도 키 맞추기식으로 승진하면서 그동안 예상돼온 그룹 분할의 뼈대가 확정된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장녀인 부진씨는 호텔신라, 삼성에버랜드 전무에서 부사장을 건너뛰고 에버랜드 전략담당 사장 겸 호텔신라 사장으로 파격 승진했다. 부진씨에게는 새로 삼성물산 상사부문 고문 직함도 주어졌다. 제일모직과 제일기획 전무로 있던 서현씨 역시 두 회사의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재용 사장은 삼성그룹의 지주회사격인 삼성에버랜드 지분 25.1%를 보유하고 있다. 부진과 서현씨 모두 8.4%씩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나 그룹 승계와 관련해서는 애초에 오빠와 같은 위치를 확보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따라서 사실상 회사 수장 자리를 맡긴 이번 인사는 이건희 회장이 딸들의 몫에 어느 정도 선을 그어준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이같은 배경 아래 이재용 사장은 삼성전자를 필두로 삼성전기, 삼성SDI 등의 전자 계열사와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삼성증권 등 금융 계열사를 이끄는 그룹의 계승자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장녀인 이부진 사장에게는 호텔신라가 하고 있는 호텔 및 면세점업과 함께 삼성물산의 상사 부문, 레저와 식문화, 환경 및 부동산 관련 E&A 부문 등 에버랜드의 계열사 지분 관리 부문을 제외한 부문, 그리고 그가 대주주로 있는 삼성석유화학이 해당 몫으로 갈 것이라는 예측이다.
재연되는 `90 대 10`의 원칙 이같은 후계 구도는 선대인 고 이병철 회장이 했던 것과 닮아 있다. 고 이병철 회장은 그룹을 이건희 회장에게 넘기려 마음 먹은 뒤 90대 10의 상속 원칙을 세우고 실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계승자에게 그룹의 90을 주고, 나머지 10은 나머지 형제들이 사회적 체면을 유지하면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
이재용 사장이 그룹의 절대 부분을 차지하는 전자와 금융 계열사를 가져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건희 회장 역시 아버지가 세운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삼성전자의 규모가 세계에서도 내로라하는 규모다 보니 호텔신라나 제일기획, 제일모직 등의 시가총액이 1조원을 넘고 있음에도 부진씨와 서현씨에게 돌아가는 몫이 선대보다 적게 느껴질 정도다. 이건희 회장이 구조조정본부에 이어 미래전략실이라는 그룹 컨트롤타워를 설치한 것도 고 이병철 회장이 그룹의 기획과 조정을 위해 비서실을 운용했던 것과 닮아 있다.
이병철 회장의 90대 10의 상속원칙은 `분가`라는 또 다른 원칙에 의해 뒷받침됐다. 과거 우리나라 그룹에서는 자식간 균등 상속이 대세를 이뤘다. 그런데 이 경우 자식간에 경영권 분쟁이 벌어질 개연성이 존재했고 실제로 그렇게 된 경우도 상당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그의 동생인 김호연 전 빙그레 회장간의 상속 다툼, 두산그룹과 금호그룹의 경영권을 둘러싼 형제간 분쟁, 현대그룹의 왕자의 난 등이 그런 사례라 할 만하다.
분가 원칙이 오늘날 CJ와 한솔, 신세계 등 삼성 방계 그룹을 낳았고,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부사장이 향후 당연히 그룹에서 독립해 나갈 것이라고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병철 회장의 비서였던 박세록씨는 `이병철 회장을 추모한다`(1996년 출판)에서 “이 회장이 분가원칙과 같은 방법을 선택하지 않고 90%나 10%의 지분을 단순 상속으로 자녀들에게 남겼다면 주주총회 때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일상의 경영활동에도 바람잘 날이 없었을 것”이라고 분가 원칙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삼성SDS 상장 계획없다” 지난해초 삼성생명의 상장에 앞서 메리츠증권은 삼성그룹이 삼성생명 상장이후 그룹 지배구조를 재정비하는 8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그동안 삼성자동차 채무에 대해 삼성그룹 핵심 계열사들이 신용을 공여하고 있어 삼성그룹의 구조 개편에 가장 큰 장애물로 작용했으나 삼성생명 상장으로 삼성차 채무문제가 해결되고 후계 구도 개편 논의도 한층 더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 맞춰 방안들이 제시됐다.
방향은 크게 3가지였다. 지주회사로 가지 않고 현 체제를 유지하는 것과 한 체제안에 삼성생명을 비롯한 금융 부문을 함께 가져가는 방향, 그리고 제조 부문과 금융 부문을 분리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데 어느 방향이든 삼성카드가 보유한 삼성에버랜드 지분의 처리를 배경에 깔고 있다. 삼성카드는 삼성에버랜드 지분 25.4%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중 5% 초과분인 20.4%는 금융산업 규제법에 따라 오는 2012년 4월까지 매각해야 한다. 당장 발등의 불인 셈인데, 삼성에버랜드가 삼성그룹의 지주회사라는 점에서 해당 지분이 어떻게 처리되느냐에 따라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도 방향을 달리할 가능성이 있다.
이것이 삼성SDS의 상장이 초미의 관심이 돼왔던 이유다. 삼성SDS는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삼성전기가 50% 가까운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재용 사장이 9.14%, 그리고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부사장이 4.56%씩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SDS는 타 계열사중 규모가 큰 곳은 거의 보유하고 있지 않아 3남매가 자신들이 보유한 지분을 현금화해 지배구조 개편시 사용할 수 있는 지렛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돼 왔다. 사실상 지배구조 개편의 트리거 역할을 할 것으로 본 것이다.
업계에서는 삼성SDS가 올해말이나 내년초에 증시에 상장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삼성카드의 삼성에버랜드 지분 매각 시한이 다가오고 있는 것과 맞물릴 것으로 판단했던 것. 그리고 상장과 함께 얽히고 설킨 지배구조 문제도 해결의 실마리가 풀릴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지난 1월11일 삼성SDS의 고순동 신임 사장이 주식시장 상장 계획이 없다고 공식 선언했다.
결국 최소한 에버랜드 지분 매각 이벤트와 관련해서는 3남매에 의한 그룹 분할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삼성 안팎에서는 삼성SDS의 덩치를 더 키워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된 결과라고 본다. 삼성SDS는 지난해 정관에 물류 사업을 추가하고 기존 IT 서비스에서 벗어나 물류로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해 가고 있다. 삼성측은 부인하나 현대기아차그룹의 물류 계열회사인 글로비스가 최근 몇년새 눈부신 성장을 했고, 정의선 부회장의 그룹 장악에 핵심이 된 것을 감안하면 삼성SDS 역시 그같은 길을 걸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삼성SDS가 그룹내에 물류 계열사가 딱히 없는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물류 사업을 전담하고, 막대한 유보금을 이용해 M&A에도 적극 나서 몸집을 키우려 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이야기”라며 “결국 수년뒤 삼성SDS를 통한 3남매의 자금력은 더욱 탄탄해 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딸들의 몫 변화 가능성은 3세 지배구조가 확정됐다해도 더 이상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고 이병철 회장이 생전에 90대 10의 상속원칙과 분가원칙을 확립했다 해도 진통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병철 회장은 이건희 회장을 후계자로 삼기로 마음 먹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장남과 차남의 쿠데타에 직면했다. 1973년께 일어난 투서 사건이 그것이다. 이건희 회장이 20년 가까운 경영 수업을 거쳐 1987년 회장에 공식 취임했으나 1995년 12월까지도 분가에 대한 진통이 남아 있었다. 다른 그룹처럼 사활을 걸고 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현재 이재용 사장이 경영능력을 검증받지 못했다는 비난이 있는 반면 딸들은 승승장구하는 모양새다. 이재용 사장은 2000년대 초반 벤처붐 시절 e-삼성 실패의 꼬리표가 여전히 달려 있다. 반면 장녀 이부진 사장은 지난해 연말 인사에서 삼성물산 상사 부문 고문직을 새로 받았다. 이는 이부진 사장이 자신의 몫을 늘린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삼성그룹 내부에서도 금융부문의 계승자가 어정쩡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재용 사장의 포지션이 삼성전자와 신사업쪽에 치우쳐져 있는 데다 이재용 사장과 금융부문의 연결고리도 딱히 보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메리츠증권의 분석상 금융 부문을 분리, 이건희 회장 지배 아래 두는 방안도 가능하다.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제2호 마켓in`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제2호 마켓in은 2011년 2월1일자로 발간됐습니다. 책자가 필요하신 분은 문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의 : 02-3772-0381, bond@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