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 소굴'' 中 저장성, 한국기업 라이벌로 급부상

중국 500大 민영기업 중 202개나 차지 “불량품 내면 보너스 깎여”
경쟁 체질화 첨단기술·고급브랜드 개발로 한국 위협
  • 등록 2007-06-18 오전 7:09:02

    수정 2007-06-18 오전 7:09:02

[조선일보 제공] 시후(西湖) 주변. 깔끔한 도로 곳곳에 유럽의 어느 거리로 착각할 만큼 우아하고 특색 있는 고급 레스토랑들이 즐비하다.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의 부티크가 모인 ‘명품거리’는 서울 청담동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화려하다. 거기에 벤틀리와 페라리, 포르셰 등 고급 승용차 매장들까지.
 
포르셰 매장에 들어가 보았다. 최저 120만위안(약 1억5000만원)에서 최고 175만위안(2억1000만원)에 이르는 승용차 4대가 전시돼 있었다. 그런데 그 중 2대는 이미 팔렸고(sold) 1대는 예약됐다(reserved)는 표시가 붙어 있다.

부자가 많은 것은 이곳이 중국의 민영기업 메카이기 때문이다. 2005년 중국 500대 민영기업 중 저장성 기업이 무려 202개를 차지하며, 중국 과학아카데미가 선정한 50대 혁신기업 중 저장성 기업이 19개에 이른다.

저장 상인들은 정부의 지원에 기대지 않고 오로지 맨주먹과 의지만으로 기업을 창업해 엄청난 부를 일궜다. 정부의 계획과 전폭적인 지원, 외자 유치를 통해 발전한 상하이(上海), 선전(深?) 등 14개 연해(沿海) 도시와 대조적이다.

저장성에선 시장(市場)과 경쟁(競爭)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자본주의의 선배인 한국도 경쟁 강도 면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다.





  • ▲중국 최대 온라인 경매사이트인 알리바바닷컴의 항저우(杭州) 본사 사무실. 영어 교사 출신의 창업자 마윈(馬雲·43) 회장은 저장성(浙江省) 기업인들의 도전 정신과 차이나 드림의 상징이다. 알리바바닷컴은 연간 1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며, 올해 홍콩이나 뉴욕 증시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블룸버그
지난 5일, 저장성 원저우(溫州)에 있는 중국 최대 라이터업체 대호(大虎) 라이터의 공장에서도 어김없이 시장 원리는 작동하고 있었다.

2층 공장에서 260여 명의 직원들이 금속제 라이터 생산에 열중하고 있었는데, 독서실처럼 구획된 개인 작업대마다 각각 노란색과 빨간색 깃발이 꽂혀 있다. 노란색은 불량품을 많이 낸 ‘관리 대상’ 직원이라는 뜻이다. 불량품 개수에 따라 보너스도 깎인다.

그래서인지 반팔 작업복을 입은 직원들은 덥고 습기 찬 공기 속에서도 무척 진지하게 라이터를 조립하고 있었다. 거의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앳된 얼굴들이다. 1000여명의 직원들은 평균 1400위안(약 17만원)의 월급을 받으며 하루 10∼12시간씩 일한다.

보일러 배관공 출신인 이 회사의 저우다후(周大虎·56) 회장도 해외 68개국에 라이터를 수출해 2억위안(약 2400억원)의 매출을 올리기까지 16년 간 3500개 라이터 업체와의 무한경쟁을 뚫고 지나왔다. 현재 원저우의 라이터 기업은 500여개. 3000여개 기업이 10여 년 만에 사라진 것이다.

저우다후 회장은 “기업을 창업해 수천 개 기업과 경쟁하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지난 91년 창업할 때 성공하지 않으면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맹세했고 실제로 조그만 성공을 이루기까지 공장에서 5년을 먹고 잤다”고 말했다.

귀가 시간도 아끼기 위해 공장 한 귀퉁이에 2평짜리 쪽방을 만들어 가족이 5년을 살았다는 것이다. 주방이 없어 바닥에 주저앉아 밥을 지어먹고, 화장실이 없어 근처 공중 화장실에서 용무를 해결했다. 이렇게 해서 성공한 그는 최근 장쩌민 전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로부터 “중국을 대표하는 민영 기업가”라는 찬사를 받았다.





원저우 공상연합회의 왕신푸(王心阜) 부회장은 “누군가는 창업하고 누군가는 망하는 것은 시장경제의 특징”이라며 “시장경제의 가치에 맞추는 사람은 성공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도태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저장성 출신인 완샹그룹 루관추(魯冠球) 회장은 “시장이 있는 곳에 반드시 저장 상인이 있다”고 말했다.

시장과 함께 저장성 경제도 급성장했다. 1970년대만 해도 저장성의 1인당 GDP는 중국 중위권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은 3400달러(2005년)로 베이징, 톈진, 상하이에 이어 4위이다. 농촌을 제외한 도시 인구만 따진다면 저장성이 사실상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다. 또 저장성 도시 거주자의 이자 수입은 상하이의 4.5배이고, 배당 수입은 5.3배에 이른다(2004년 기준).

저장성 경제는 초기엔 저임금을 바탕으로 한 ‘짝퉁’ 제품 산지로 출발했다. 1987년엔 항저우의 도심 광장에서 사람들이 원저우산 가짜 저질 구두 화형식을 벌여 저장 기업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저장성은 더 이상 짝퉁 생산기지, 저임금 생산기지에 머물지 않는다. 저장의 기업인들은 이미 한국을 위협하는 차세대 브랜드와 첨단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고급 신사복 업체 바오시냐오는 1996년 창립 직후부터 고가 브랜드 전략으로 승부를 걸었다. 이탈리아에서 디자이너와 원단을 수입한 뒤 평균 3000위안(약 36만원)짜리 신사복을 팔아 10년 만에 중국 3대 신사복 업체로 성장했다.

이 회사 우즈쩌(吳志澤·47) 회장은 “브랜드가 인정받으려면 그 나라의 경제력과 문화가 인정받아야 한다”고 전제, “지난 20년간 계속 발전한 중국의 경제력은 이미 인정받고 있고 중국 문화도 재조명받고 있어 5년 안에 세계 브랜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 당(唐)·송(宋) 시대의 시안(西安)과 카이펑(開封)은 지금의 파리처럼 세계 패션을 주도했다”면서 “과거 중국이 가졌던 것을 복원만 하면 된다는 점에서 더 자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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