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렬 맨 앞에는 이모(50)씨가 있었다. 이씨는 가족 3명과 함께 18일 오후 10시께 왔다고 했다. 신권이 처음 발행되는 22일 오전 9시30분까지 무려 나흘 밤을 온 가족이 거리에서 지새는 셈이다. 다른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지만 정작 이씨는 별 대수롭지 않은 표정이었다. "지난해 5,000원권 새 돈은 늦게 가서 놓쳤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한달 전부터 가족 모두가 일찍 오겠다고 마음 먹었죠."
이씨는 경기 성남시에서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지만 잘 안돼서 걱정이라고 했다. 이변(?)이 없는 한 그는 일련번호가 '0010001'번부터 시작하는 돈 묶음을 손에 쥔다. 경매를 거치지 않고 시중에 풀리는 가장 앞선 번호로, 몇 년 지나면 적어도 10배 이윤을 남길 수 있다고 한다. 이씨는 "새 돈은 우리 가족에게 새해 선물이나 마찬가지"라며 웃었다.
그 뒤에는 정모(36)씨가 있었다. 근처 고시원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정씨는 19일 오전 2시30분께 혼자 왔다. 그는 "공부도 잘 안되고 자꾸 잡생각만 나서 돈이나 벌까 하고 왔다"며 "집에서는 아들이 이러고 있는 줄 모른다"고 씁쓸해 했다.
행렬 중간에는 수더분한 인상의 아저씨 5명이 모여 있었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 한 동네에서 장사를 하는 이웃이라고 했다. 바지 속 종아리에는 신권으로 바꿀 1만원권 100장이 테이프로 감겨 있었다. 최모(53)씨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었다. 지난해 5,000원 신권 열풍을 보고 집에 있으면 바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같이 온 박모(52)씨는 "나중에 큰 돈이 되는데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냐"며 "사흘 동안 노숙하러 간다는 말에 가족들은 유별나다며 잔소리를 했지만 벌써 마음이 든든하다"고 거들었다.
22일 아침 이곳에서 교환되는 신권은 모두 2만장. 1인 당 한도는 100장이니까 200명 뒤에 있는 사람은 헛수고인 셈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행렬은 계속 늘었다. 아들(25) 며느리(25)와 함께 250번째에서 자리를 펴던 전모(62)씨는 못내 아쉬운 듯 중얼거렸다.
"혹시 모르는 일이잖수. 그래도 좀 더 일찍 왔으면 좋았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