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대규모 양적 완화에 따른 유동성 파티가 끝나고 시장이 급격하게 움츠러들면서 ‘빅딜(대형거래)’을 찾아볼 수 없는 해였다. 유독 부진했던 증시 흐름에 수익률도 미끄럼틀을 타면서 올 한 해 부진한 성적이 예상되는 가운데, 큰손들은 새해에 고금리 시대를 맞이하며 매력적인 투자자산으로 부상한 채권을 눈여겨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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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대체투자 밑바탕 두고 채권 투자 ‘눈독’
19일 이데일리가 국내 연기금·공제회·중앙회 등 12곳의 기관투자가 최고투자책임자(CIO)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중 10명의 CIO가 내년엔 인플레이션 안정화 및 경기 둔화로 인한 채권 투자를 적절한 전략으로 꼽았다.
수년간 이어진 저금리 시대가 저물고 고금리 시대의 막이 오르며 채권 투자에 대한 열기가 서서히 달아오르는 가운데 큰손들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이다. 장기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고금리 채권은 높은 이자를 따박따박 받을 수 있고, 올해 금리가 급격하게 오른 만큼 채권가격은 떨어졌으니 저가에 매수할 수 있는 기회라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 기관투자가 CIO는 “10년물 미국 국채 금리가 올 초 1.5% 수준에서 최근 3.5%까지 상승해 이자 수익 관점에서 채권 자산의 매력도가 점차 커졌다”며 “올해 인플레이션 급등 요인이었던 병목현상이나 전쟁 등 불확실성이 상당 수준 해소돼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를 중심으로 채권 비중을 확대하는 것은 적절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대체투자는 여전히 CIO들의 관심사였다. 서술형 응답에서 12명의 CIO 중 10명이 중장기 전략적 자산배분(SAA)상 내년에 우량자산 중심으로 대체투자 확대 기조를 유지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대체투자 중에선 사모대출펀드(PDF)와 인프라 자산 등이 인기가 많았다. 대체투자가 유동성 및 가격평가의 투명성이 낮다는 단점이 있지만, 전통자산보다 위험 대비 수익률이 높아 수십 년 길게 내다보고 투자하는 기관투자가 성격에 적합하다는 이유에서다.
올해는 주식과 채권의 역의 상관관계를 깨고 1970년대 이후 처음으로 주식과 채권시장이 동시에 약세를 보이면서 상대적으로 대체투자 비중을 높게 가져갔던 기관들이 선방했다. 물론 대다수 기관이 연말에 한 번 대체투자 자산규모나 수익률 등을 산정하는 공정가치평가를 진행하기 때문에 아직 부실한 대체자산이 수면 위로 드러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대체투자가 부동산·인프라·기업투자·벤처캐피털 등 다양한 자산군을 포함하고 있는 만큼 주식과 채권 모두 마이너스인 상황에서 손실을 줄이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한 공제회 CIO는 “대체투자는 상장된 자산의 단기적인 수급과 심리에 따른 불필요한 가격변동성을 회피할 수 있어 자산 자체의 펀더멘탈에 기초한 장기투자의 소신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공제회 CIO는 “고금리 환경이 지속하면서 사모대출시장에서 좋은 투자 기회가 나올 것으로 전망한다”며 “금리상승으로 밸류에이션 하락 압력이 높아진 저평가 우량기업에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동성 문제 우려도…“현금흐름 점검할 때”
한 공제회 CIO는 “고금리 상황은 현금흐름의 중요성을 높아지고 있음을 시사한다”며 “유동성이 중요한 경제 환경에서는 대체자산에 대한 비중을 확대하기보다 기존 포지션의 안정적인 현금흐름이 지속하는지를 확인하고 만기도래 시 회수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공제회 CIO도 “일부 공제회 대체투자 비중이 70%를 넘나드는데 특정 포지션에 편중하는 것은 심각한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며 “내년 상반기에 시장 전체적인 유동성 부족으로 자금 및 신용경색 상황이 우려된다”고 했다.
그러나 혼란한 자본시장 속에서 기관 특성에 맞춰 다양한 시나리오를 설정한 다음 사전적 위기와 기회를 포착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게 모든 CIO의 공통된 의견이다.
한 연기금 CIO는 “내년엔 올해보다 가격 조정폭이 좁겠지만, 리스크 오프(Risk off·위험자산 회피)의 신중한 분위기가 지배할 것”이라며 “무리한 시장 예측이나 단기적 성과를 높이는 투자를 경계하고, 중장기적으로 건전한 수익을 꾸준히 창출하는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