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마련해둔 드라이파우더(블라인드 펀드 내 미소진 자금)가 두둑한데다 원·달러 환율이 치솟으면서 투자 가성비가 이전과 비교해 좋아진 점도 원인으로 꼽힌다. 펀딩(자금 마련)에 애를 먹는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이나 프리IPO(상장 전 투자유치)에 나선 기업들이 여전한 상황에서 글로벌 PEF의 국내 자본 시장 장악력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전망마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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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자본시장에 따르면 글로벌 PEF 운용사들은 국내 투자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지난주 폐기물 업체 EMK(에코매니지먼트코리아) 우선협상대상자에 오른 싱가포르 케펠인프라스트럭처트러스트(케펠인프라)가 대표적이다.
케펠인프라가 EMK 인수를 위해 제시한 가격은 약 7000억~8000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당초 시장에 점치던 매각 희망가인 1조원을 밑도는 수준이지만 지난해 EMK 에비타(상각전 영업이익·EBITDA) 대비 멀티플(기업가치를 산정할 때 쓰는 적정배수)을 20배 넘게 인정해주면서 인수전에서 승기를 잡았다.
이밖에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글로벌 투자자를 대상으로 프리IPO(상장전 투자유치) 작업에 나섰다. 시장에서 점치는 자금 조달 목표는 최소 5000억원에서 많게는 1조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최대 조 단위 자금 조달을 목표로 하는 만큼 자금이 넉넉하고 체결과 동시에 자금을 싸줄 수 있는 PEF 운용사들이 주요 대상이 되고 있다.
투자 할인+달러 강세…위기 아닌 기회
실제로 글로벌 PEF 운용사들은 넉넉한 드라이파우더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계 PEF 운용사인 KKR(콜버그크래비츠로버츠)는 지난해 39억달러(5조원) 규모의 아시아 태평양 인프라 펀드와 17억 달러 규모의 아시아 부동산 펀드를 구성해 놓은 상태다. 이밖에 베인캐피탈이 2조 5000억원 규모의 스페셜 시추에이션 펀드인 ‘아시아 2호 펀드’ 조성을 갈무리하며 국내 투자처를 들여다보고 있다.
무엇보다 업계가 주목하는 요소는 무섭게 치솟는 달러 가치다. 지난 15일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장중 1320원을 돌파하면서 2009년 4월 이후 13년 2개월 만에 최고치를 찍기도 했다. 달러 강세 상황에서 할인된 에쿼티(지분) 투자를 할 수 있다는 점 자체가 호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 PEF 운용사 관계자는 “위기라고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글로벌 PEF 입장에서는 지난해와는 몰라보게 투자 환경이 수월해졌다고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현 상황에서 글로벌 투자자들이 만족하진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협상 주도권은 물론 엑시트(자금회수)때 더 유리한 옵션을 요구하는 등 완벽하게 유리한 상황을 투자 조건으로 넣는 사례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