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카드를 사달라고?

[데스크의눈]
  • 등록 2022-05-04 오전 4:30:00

    수정 2022-05-04 오전 8:45:56



[이데일리 권소현 마켓In 센터장] “포켓몬카드 한 박스 사주세요”

남의 얘기인줄만 알았는데 결국 올 게 왔다. 초등학교 3학년인 아이는 올해 어린이날 선물로 포켓몬카드를 요구했다. 대충 1만~2만원이면 사겠지 했지만 착각이었다. 종류도 많고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아이는 5~6장이 들어 있는 팩 몇개 말고, 30팩이 들어 있는 한 박스를 사달란다. 가격이 좀 나가는 ‘배틀리전’이나 ‘창공스트림’이었으면 좋겠다고 콕 집어 얘기한다. 대략 6만~8만원 수준이다.

포켓몬카드를 왜 갖고 싶은지 물었더니 카드를 잘 뽑으면 돈이 된다고 한다. 요새 친구들과 포켓몬카드로 같이 놀기도 하냐는 질문에는 거래만 할 뿐, 놀이용은 아니라고 한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결제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던 아이는 비싸게 팔리는 희귀한 카드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연신 주문을 외운다. 팩이 아닌 박스로 사야 하는 이유도 희귀한 카드가 포함돼 있을 가능성이 높아서라고 설명한다.

몇 주 전 친구한테 선물받았다며 들고온 포켓몬카드 한 장이 얼마에 거래되는지 시세를 알아봐 달라고 했던 게 떠올랐다. 벌써 경제관념을 갖췄다고 좋아해야 할 일일까. 포켓몬 카드를 팔아서 돈을 번다면 아마도 그 이유를 대며 계속 포켓몬카드를 사달라 하지 않을까, 아이가 이러다가 갈수록 사행성을 보이게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됐다. 유난히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을 선호하는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것인가 하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

2000년대 초반 닷컴버블 붕괴 직전부터 자본시장을 지켜보면서 느낀 건, 화끈한 한방에 대한 한국인의 사랑은 대상을 바꿔가며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파생상품이 대표적이다. 1996년 5월 코스피200 선물시장이 문을 연 이후 5년 만인 2001년 한국 파생상품 거래규모는 전세계 1위에 올랐다. 이후 2011년까지 부동의 1위를 지켰다. 전세계 거래량의 4분의 1을 차지할 정도였다. 하지만 불나방처럼 선물옵션에 뛰어든 개인투자자들이 쪽박 차고 깡통 차면서 ‘개미들의 무덤’이라는 별명까지 붙자 당국이 규제에 나섰고 이후 시장은 쪼그라들었다.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암호화 화폐도 마찬가지다. 24시간 널뛰기를 하는 변동성 높은 자산임에도 가격이 급등하고 투자 대박 사례가 나오자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뛰어들었다. 코인힐스에 따르면 3일 기준 최근 24시간 동안 통화별 비트코인 거래량을 보면 미국 달러가 86.81%로 압도적이고 일본 엔화가 5.35%로 2위, 그 다음이 한국 원화가 3.17%로 3위였다. 유로화나 파운드화 보다도 많은 수준이다. 코엔마켓캡이 집계한 최근 24시간 거래량 순위에는 한국의 업비트와 게이트아이오가 나란히 24위, 25위에 올라 있다.

서학개미들의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사랑도 여전하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빅스텝을 넘어 0.75%포인트 이상의 자이언트스텝 금리인상에 나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면서 미국 증시도 힘을 못쓰고 있지만, 최근 한 달간 서학개미들이 가장 많이 순매수한 종목 2위에는 프로셰어스 울트라프로 QQQ ETF가 올라있다. 기초지수인 나스닥100 지수의 일간 변동률을 3배로 추종하는 초고위험 ETF다. 하락장에 야수의 심장을 가져야만 살 수 있다는 세배 레버리지 상품인데 서학개미는 겁없이 담고 있는 것이다.

저금리 시대가 저물고 이제 금리가 오를 일만 남았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예측하지 못한 돌발 변수가 언제 또 튀어나올지 모른다. 리스크 관리를 잘 해서 있는 자산을 지키는 게 성공하는 투자전략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인생은 타이밍, 인생은 한방”이라고 말하는 아이에게도 리스크 관리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가르쳐야겠다. 포켓몬카드 한 박스를 사도 돈 되는 카드 한장 없으면 괜한 돈만 쓴 거라는 점도 말이다. 나중에 불나방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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