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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산부라 바로 나에게 연락이 왔는데 심전도상 환자의 실신은 부정맥으로 인한 증상은 아니었고, 심장 초음파를 시행했을 때 우심실이 커지고 폐고혈압이 심해져 있었으며, 주 폐동맥에 큰 색전이 동반돼 있었다. 환자는 임산부로 CT 촬영은 하지 못하고 하지에 초음파도 함께 시행했는데 역시나 심부정맥 혈전이 함께 동반돼 있었다.
환자는 임신 중에 발생한 혈전색전증으로 ‘심부정맥혈전증’과 ‘폐색전증’으로 임상 발현했고 폐색전증에 의한 우심실의 압력 증가로 우심부전이 발생, 그로 인한 혈류의 저하로 잦은 실신을 했던 케이스였다.
임신을 하면 아이를 낳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과다 출혈을 막기 위해 체내에서 혈액을 응고시키는 물질이 증가하고, 임신 중 에스트로겐 수치가 높아지면서 혈전이 일반인에 비해 더 잦은 빈도로 생길 수 있다. ‘심부정맥혈전증’은 근육에 둘러싸인 심부(深部)정맥이 혈전으로 막히는 것이다. 다리로부터 시작된 혈전은 떨어져 나와 폐에 혈액을 공급하는 폐동맥을 막는 ‘폐색전증’으로 이어지게 될 경우 심한 경우 급사할 수도 있는 병이다.
환자의 경우는 본원을 방문하기 전에 MRI 촬영을 몇 번 했고, 부정맥 의심으로 약을 쓴 상태이다. MRI는 태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잘 알려진 바가 없고, 부정맥 약제도 문제가 되는 약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다. 또한 실신을 몇 차례 하면서 아이에게 다소 악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고, 앞으로 폐색전증에 대해 출산 후까지 약물을 사용해야 하고 중간에 약물을 사용하면서 갑자기 출산을 하게 되면 출혈이 멈추지 않을 수도 있다.
게다가 환자는 이제 곧 40이 되는 다소 고령 산모다. 임산부는 산모와 아이라는 두 사람의 생명이 달려 있고 아이가 잘못 될 경우, 혹은 정상적으로 태어나지 않을 경우 가족이 부담하는 절망감과 죄책감이 이루 표현할 수 없고, 산모가 잘못될 때에도 마찬가지다. 환자와 배우자 그리고 친정 부모님과 시부모님을 모두 불러 현재 환자는 폐색전증에 대해 반드시 치료를 해야 하고, 저분자량 헤파린은 태반을 통과하지 않으므로 태아에게 안전하지만 심한 폐색전증이었기 때문에 그 사이 생겼을 아이의 문제, 혹은 출산 전후의 문제들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을 드렸다.
그리고 주치의로서 최선을 다해 아이와 산모의 회복을 돕겠지만 어느 정도 하늘이 도와야 하는 부분들도 있으니 함께 기도하고 마음을 모으도록 말씀을 드렸다. 여러 변수들이 있어 가족들도 다소 암울한 상황이지만 아이와 산모를 끝까지 지키고자 하는 마음을 굳게 다지셨다.
인사차 방문한 환자와 함께 온 건강한 유치원생 아이를 바라보는 주치의의 마음은 아이가 누구보다 잘 커주길 바라는 마음과 함께 건강한 출산을 하게 해주신 모든 분들과 하늘에 감사한 마음 한가득이다. 혈전색전증은 임신 중이나 산욕기에 일어날 수 있는 합병증 중의 하나로 폐색전에 의한 모성 사망의 위험이 있으므로 매우 중요한 질환이다.
이를 예방하려면 임신 중이나 출산 후 눕거나 앉아만 지내지 말고, 걷기 등 가벼운 운동을 지속하고, 물을 충분히 마시고, 체중이 과도하게 늘어나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아울러 다리 통증이나 호흡곤란 등을 단지 임신으로만 치부하지 말고 병원을 한번 정도 방문하거나 주치의와 상의해 추가적인 검사를 진행해 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