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SE에 상장한 알리바바는 공모가인 68달러보다 38.07% 오른 93.89달러에 첫날 거래를 마치며 미 증시에 데뷔했다. 당시 종가기준 알리바바 시가총액은 2314억달러(약 241조원)까지 치솟았고 당시 페이스북 시가총액(2020억달러)을 제치고 구글에 이어 인터넷 기업 시총 2위 자리에 올랐다.
그로부터 2366일 후인 지난달 11일.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이 마윈이 선 그 자리에서 첫 주식 거래를 알리는 오프닝벨을 울렸다. 쿠팡 주가는 거래 첫날 공모가인 35달러에서 81.4%나 오른 63달러50센트에 장을 마쳤다. 국내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업체가 미국 자본 시장에 화려하게 데뷔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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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증시 입성은 그저 남의 일’로 여기던 국내 자본시장에 변화의 물결이 거세지고 있다. 국내 증시에서는 넘볼 수 없는 밸류에이션(기업가치)에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글로벌 이슈 몰이까지 더해지자 기업공개(IPO)를 조율하던 공모 기대주들이 일제히 미 증시를 검토하고 나섰다. 거센 변화의 물결에 과감하게 노를 저어 보자는 계산이 선 것이다.
변화의 파도는 크고 가파르게 진행 중이다. 27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올해 또는 내년 미국 증시 입성을 검토 중인 기업들로는 식료품 전자상거래 업체인 마켓컬리와 숙박예약 서비스 업체인 야놀자, 네이버웹툰, 카카오엔터, 카카오모빌리티 등이 꼽힌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들이 미 증시 상장 성패에 따라 무신사 등 잠재적 IPO 기대주들도 뉴욕행을 고려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에서는 마켓컬리의 미 증시 입성이 사실상 굳어진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리고 있다. 투자 유치에 따른 지분 희석 우려를 차등의결권을 통해 해결할 계산을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추가 투자유치로 전체 기업가치를 불려 공모가 산정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네이버 웹툰도 미국 증시 상장 가능성을 언급했다. 박상진 네이버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 20일(현지시각)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투자자에게 더 친숙해지고 믿음직해질 수 있다면 (미국 증시) 상장을 고려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미 증시 입성에 초점이 맞춰진 만큼 해외 언론을 통해 분위기 점검에 나섰다는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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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전에도 국내 기업의 미 증시 상장 사례는 있었다. 닷컴 열풍이 불었던 지난 1999년 11월 두루넷이 심볼 ‘KOREA’로 상장했지만 2003년에 상장 폐지되며 쓴 맛을 남겼다. 이후 미래산업, 웹젠 등도 미국 증시에 도전했지만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엔터·콘텐츠 업계에만 있는 줄 알았던 해외 진출이 이제는 자본시장으로 번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 PEF 업계 관계자는 “BTS(방탄소년단)나 봉준호 감독에 이어 쿠팡마저 미국 시장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보였다고 봐야 한다”며 “마치 ‘처음이 어렵지 다음은 어렵지 않다’는 마음가짐이 퍼지며 해외 진출을 고려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과거와 달리 해외 자본시장에 밝은 인물들이 포진해 있다는 점도 주목할 요소다. 실제로 김범석 쿠팡 대표와 김슬아 마켓컬리 대표 모두 해외에서 학업을 마친 뒤 해외 자본시장에서 초반 커리어를 쌓았다. 명분보다 실리를 추구하는 기업 운영자들의 가치관이 미 증시 입성이라는 목표와 결합되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흐름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쿠팡과 같은 깜짝 스토리가 향후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물음표를 거두지 않았다. 꼼꼼한 사전준비와 전략 없이 무턱대고 상장에 임했다가 자칫 실패할 수 있어 유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길재욱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한국 기업이 여건만 된다면 해외에 상장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권해야 하는 일이다”면서도 “IPO는 끝이 아닌 시작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고 말했다. 길 교수는 “미국에 상장할 경우 상장 유지비용 등이 우리나라와는 비교가 안된다는 점 등을 숙지하고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