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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놓고 일본 진보 인터넷매체인 ‘리테라’는 궁내청(왕실) 담당 기자의 말을 인용해 “새 연호를 논의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말도 있지만, 그 정도라면 측근 차원에서도 충분히 끝날 일이었을 것”이라며 “굳이 아베 총리가 왕세자와 면담한 것은 ‘그 자체’가 중요했기 때문이 아니었겠느냐”고 전했다. 이 기자는 “이미 알려졌듯 아베 정권과 현재 일왕 부부의 관계는 좋지 않다”며 “아베 총리로 보면 왕세자의 일왕 즉위는 왕실과의 관계를 수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다.
아키히토 일왕과 ‘불편한 관계’였던 아베…새 일왕과 관계 개선 도모
‘과거 책임’을 강조하는 아키히토 일왕과 ‘미래 지향’이라는 명목 아래 반성을 거부하는 아베 총리는 계속 부닥쳐왔다.
아키히토 일왕은 1989년 일왕에 즉위하자마자 과거로의 ‘위령(慰靈) 여행’을 시작했다. 1991년 타이·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를 방문하고 1992년에는 중국을 방문했다. 2005년에는 사이판, 2006년에는 싱가포르·타이를 찾았다. 2009년에는 일본군이 1941년 진주만 공격을 감행한 하와이를, 2015년 4월에는 팔라우를 방문했다. 아키히토 일왕은 현지를 방문했을 때 일본인 병사의 위령비뿐만 아니라 상대국의 위령비에도 동시에 참배했다.
일본 주간지 ‘주간현대’의 부편집장이었던 곤도 다이스케는 2015년 월간중앙에 기고한 글에서 “(아키히토 일왕의 위령여행에는) ‘일본은 앞으로 두 번 다시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강한 결의가 담겨져 있다”고 해석했다.
곤도의 기고문에 따르면 전후 70년 종전기념일(8월 15일)을 맞아 아베 담화문에 전쟁에 대한 사과를 넣으라고 압박한 것 역시 아키히토 일왕이었다. 아베 담화 이후 아키히토 일왕은 종전기념일 담화문에서 “과거를 돌이켜보고 지난 전쟁에 대한 깊은 반성과 함께 전쟁의 참화가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는 새 연호인 레이와의 의미에 대해 “혹독한 추위 뒤 봄에 활짝 피는 매화처럼 일본인 한 사람 한 사람의 희망이 크게 꽃피우는 그런 일본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고 있다”고 밝혔다.
잃어버린 20년, 동일본대지진 등 자연재해, 옴진리교 사건 등 유난히 사건·사고가 많았던 헤이세이(平成) 시대를 뒤로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아베 총리가 일왕 즉위식을 이유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국빈 초청한 것이나 이례적인 왕세자 접견 등의 행보를 보며 아베 총리가 나루히토 왕세자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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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히토 왕세자는 ‘일왕의 국사에 관한 모든 행위에는 내각의 조건과 승인이 필요하다’는 일본의 헌법 조항에 따라 대외적인 발언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 55세 생일을 맞아 열린 2015년 기자회견에서 그는 “나 자신은 전후 세대로서 전쟁을 체험하지 않았지만, 전쟁의 기억이 희미해지고 있는 오늘날 겸허하게 과거를 되돌아보는 동시에 전쟁을 체험한 세대부터 전쟁을 모르는 세대에게까지, 전쟁의 비참한 체험이나 일본이 걸어온 역사를 정확하게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발언했다. 이는 아버지 아키히토 왕의 역사관을 그대로 추종하는 내용이다.
아울러 그는 당시 개헌에 대해 “지금의 일본은 전후 일본헌법을 기초로 삼아 쌓아 올렸고 평화와 번영을 향유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앞으로도 헌법을 지키는 입장에 서서 필요한 조언을 얻으면서 일에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에둘러 개헌론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나루히토 왕세자가 아베 총리의 개헌론에 반대할 것이라고 보는 이유 중 하나다.
아키히토 일왕은 1989년 즉위 첫 소감으로 “헌법을 지켜 이에 따라 책임을 다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5월 1일 자정에 퇴위하는 아키히토 일왕이 남길 마지막 메시지와 이어 새로 즉위하는 일본의 새 왕이 어떤 첫 메시지를 내놓을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일본 왕실과 친분이 있는 뉴스사이트 레코드 차이나의 히로유키 야마키 대표는 주간현대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를 존경하는 왕세자는 아버지의 행보를 이어나갈 것”이라며 “배타주의적인 내셔널리즘이 대두하는 가운데, 꿋꿋하게 행동을 옮기며 존재감을 나타낼 것”이라고 말했다.